전의찬 탄소중립위원회 기후변화위원장
지난해 기상청의 ‘한반도 109년의 기후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약 100년 전에는 여름이 6월 11일 시작돼 9월 16일에 끝났는데, 최근 10년에는 5월 25일에 시작돼 9월 28일까지 계속됐다. 여름이 100년 전 98일에서 최근 127일로 한 달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대응도 제대로 못 한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은 13일 빨라졌고, 지난해 서울 벚꽃은 평균 개화일보다 17일 빠른 3월 24일 피었다. 이제는 기후가 수천 년 걸쳐 내려온 절기도 변화시키고 있다.
2020년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은 이례적으로 6개월간 지속되면서, 서울 면적의 80배나 되는 산림을 불태웠다. 이 산불로 10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고유종인 코알라의 3분의1이 죽었다. 지난해 미국 북서부는 50도 가까운 기록적인 폭염으로 큰 피해를 봤다. 2011~2020년 연평균 산불 발생 면적은 3만㎢를 넘어 1981~1990년보다 2.5배 이상 늘었다. 매년 서울 면적(605㎢)의 50배가 넘는 산림이 산불로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폭염과 산불도 예외가 아니다. 2018년 전국 모든 지역에서 최고온도 기록을 새로 썼고, 그 이후로 매년 2018년과 최고온도를 놓고 다투고 있다. 산불도 급증하고 있다. 2011~2020년 산불 피해는 연평균 약 11㎢ 면적에 660억원이었다. 그러나 최근 5년간 산불 피해는 연평균 18㎢ 면적에 1140억원이다. 단기간에 1.5배 이상 늘었다. 다른 나라에서만 산불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도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옆 동네만 불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도 불이 붙었다는 얘기이다.
기후변동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이 달성되지 않으면 이상기온이 10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귀담아듣는 국가도 사람도 별로 없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출범한 지 30년이 됐지만 아직도 지구촌 각국은 이해타산만 따질 뿐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기후가 뿔날 수밖에.
2022-02-1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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