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임금의 묘호, 누구는 조이고 종인가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임금의 묘호, 누구는 조이고 종인가

입력 2019-08-11 17:22
수정 2019-08-12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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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수 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정종수 전 국립고궁박물관장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배운 것 중 한 자도 틀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 바로 “태정태세문단세…”로 시작되는 조선 왕들의 묘호다. 선생님은 무조건 외우고 끝에 ‘조’나 ‘종’을 붙이면 된다 했다. 대학 3학년 때다. 강의 시간에 “어느 왕은 조를, 누구는 종을 붙이는가” 질문을 했다. 교수님의 답변이 참으로 걸작이었다. “옆구리서 나면 ‘조’를, 밑으로 나면 ‘종’을 붙인다” 했다. 옆구리로 난다는 것은 제왕절개로 정통이 아닌 창업 군주나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이름이요, 밑으로 난다는 것은 순산으로 대를 이은 왕을 가리킨다. 같은 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는 칭조를 하고, 반면 중종은 조가 아닌 종인가. 세조·선조·영조·정조·순조는 창업주도, 그렇다고 반정으로 즉위한 왕도 아닌데 왜 조로 붙였을까.

묘호는 죽고 난 뒤 종묘에 위패를 모시기 위해 붙여진 호칭이다. 정작 본인들은 생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름이다. 묘호는 시자(諡字)와 종호(宗號) 두 자로 구성된다. 묘호법은 주나라 제도에서 비롯됐다. ‘예기’에 별자가 조가 되고, 별자를 계승한 자는 종이 된다 했다. 나라를 세운 창업 군주는 공을 인정해 클 태(太) 자를 써 태조, 이하 수성한 왕에게는 덕이 크다 평가해 모두 종자를 붙인다. 즉 묘호는 조공종덕(祖功宗德)에 의해 정해진다. 창업 군주에게 조를 붙이는 것은 한 왕조의 시대를 열어 놓은 임금인 동시에 한 나라의 조상이란 뜻이다.

태종은 태조와 함께 나라를 세운 공이 가장 큰 사람에게 붙이는 묘호로, 예로부터 태조를 계승한 이를 태종으로 했다. 세종은 사전에 부왕이 승하하면 태종이란 묘호를 가질 것이라 했다. 세종의 경우 문종과 세종 두 가지를 놓고 논의했다. 신료들은 세종이란 칭호를 쓰면 덕행을 기록하는 데 문제가 있다며 문종을 주장했으나, 왕은 북방을 개척한 공훈을 이유로 들어 세종으로 정했다. 대개 세종이란 나라를 중흥하였거나 창업 군주에게 주어지는 묘호다.

묘호는 의정부·육조·집현전·춘추관·사헌부·사간헌 등 2품 이상이 모여 왕의 재위 시 행적을 따져 정한다. 태조부터 문종까지는 아직 왕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해 사후 한 달이 지난 후에 정했다. 예종 때부터 입관 후 대개 사후 7, 8일 전후에 정했다. 예를 들어 순조는 1834년 11월 13일 승하해 닷새째 되는 날 입관하고 이틀 뒤 11월 19일 사후 7일 만에 결정했다. 당시 순종·선종·목종 등 삼망 중 순종(철종 때 순조로 추존)을 낙점했다.

간혹 왕들이 생전에 자신의 묘호를 암시하기도 했다. 예종은 일찍이 손수 ‘예종’이란 두 글자를 쓰고 “죽어서 이 시호만 얻으면 만족하겠다”고 해 묘호를 예종으로 했다. 명종은 명(明) 자를, 영조는 영(英) 자를 얻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사후 명종과 영종(뒤에 영조로 추존)이 됐다.

임금의 조와 종의 종호는 같은 것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조선의 왕들은 중국과 달리 종보다 조를 더 높이 여겨 칭조해 부왕의 공덕을 높였다. 세조는 원래 신종·예종·성종 등 삼망을 올렸으나 부왕이 계유정난, 이징옥과 이시애의 난을 평정해 종사의 중흥을 도모했다는 이유를 들어 세조로 했다. 선조는 선종이었으나 왜구를 물리치고, 종계를 개정(태조 이성계가 명의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고려의 권신 이인임의 아들로 된 것을 바로잡음)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광해군 8년 선조로 추존됐다. 인조는 성격과 치세와 정반대의 뜻은 담은 묘호다. 처음에 효종의 강력한 주장으로 조 자를 써 열조로 했으나, 마음에 들지 않자 다시 헌종으로 고쳤다가 결국 인조로 정했다. 정조는 원래 정종이었으나, 고종이 황제가 되면서 4대를 추숭하는 과정에서 칭조됐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충렬왕 때부터 원나라의 지배로 조·종 대신 한 단계 낮춰 원나라에 충성을 다짐한다는 뜻으로 ‘왕’ 자 앞에 충을 붙이도록 했다.
2019-08-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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