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검사와 의사, ‘사자’ 직업의 의미

[마감 후] 검사와 의사, ‘사자’ 직업의 의미

송수연 기자
송수연 기자
입력 2024-03-26 01:09
수정 2024-03-2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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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경지검의 한 검사에게 “사법연수원 시절 대형 로펌에 안 가고 왜 검사가 되는 길을 택했냐”고 물었다. 그는 “어릴 때는 그냥 나쁜 사람 변호하기가 싫었다”고 답했다. 물론 변호사가 나쁜 사람만 변호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당장의 경제적 이득보다는 검사라는 직업의 자부심과 명예, 사회적 지위를 더 높이 평가했던 선택이었을 테다.

소위 ‘사자(字)’ 직업 하면 의사 또는 판검사를 말한다. 요즘은 검사라는 직업의 인기가 영 시원찮다. 상위권 로스쿨 졸업생 중에서 판사나 검사 등 공직 대신 로펌을 선택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 검찰에서는 10년차 이하 젊은 검사의 ‘탈출 러시’까지 일어나고 있다. 경직된 조직 문화, 지역순환 근무 등에 대한 기피 현상 등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진 탓이겠지만, 무엇보다 대형로펌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때문 아니냐는 게 중론이다. 검사 복을 벗고 변호사업계로 나가도 과거처럼 ‘전관예우’가 보장되는 사회도 아니다. 검찰 내부에서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느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공직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돈만 좇는 사회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는 반응도 많다.

반면 또 다른 ‘사자’인 의사의 인기는 최근 몇 년 사이 급상승했다.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의대 열풍’은 과하다 못해 눈살을 찌푸릴 정도다.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초등 의대반’까지 유행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의사는 물론 오랫동안 선망의 직업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토록 과한 열풍이 부는 것은 기이하다. 갑작스레 의사의 사회적 위치가 높아진 것도 아니고, 근무 환경이 획기적으로 좋아진 것도 아니다. 결국 적나라하지만 ‘돈’ 때문이라는 이유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2021년 의사의 평균 소득은 2억 6900만원으로 10년 사이 79% 이상 올랐다. 일반 임금 근로자의 평균 소득(4200만원)과 비교하면 무려 6.8배 높은 수치라니 입이 떡 벌어진다.

의사 소득이 급상승한 데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의사 정원을 20여년간 제한해 온 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고령화 등으로 의료 수요는 많아졌는데 2000년 의약분업 시행을 기점으로 의사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의사 연봉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를 과연 온전히 의사들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라 말할 수 있을까. 근데 이제 의사 정원을 늘린다고 하니 환자를 버려둔 채 박차고 나간 의사들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고울 수가 없다.

‘사자’ 직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에는 부러움과 질투가 뒤섞여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밑바탕에는 이들 직업의 사회적 권위에 대한 존중도 깔려 있다. 한 검사의 말처럼 검사의 사회적 권위는 ‘나쁜 사람’보다는 정의의 편에 서겠다는 소명의식에서 나온다. 의사의 권위는 어떤 경우라도 환자 곁을 지킬 때 나온다. 최근 한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밝힌 소신처럼 아픈 환자를 버려두고 병원을 나서는 순간 스스로에게 지게 된다. 같은 ‘사’자라도 검사(檢事), 변호사(辯護士)와는 다르게 의사의 ‘사’자는 스승 사(師)자를 쓴다는 점은 새겨둘 일이다.

물론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도 문제가 많다. 그래도 의사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환자의 곁으로 돌아와 정부와 대화에 나서 달라. 의사의 권위가 무엇인지 보여 달라. 의사라는 직업의 위상이 국민의 뇌리에 ‘돈만’ 잘 버는 사자 직업으로 전락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송수연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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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연 사회부 기자
2024-03-2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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