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백윤 정치부 차장
올해는 특히 우리나라가 국제적 영향력을 넓히는 중요한 모멘텀으로 꼽힌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은 올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4월 ‘워싱턴선언’에 이어 지난달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는 특히 외교사의 중대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물론 한미일 정상들이 구체화한 연대 약속이 얼마나 실효성 있고 견고하게 이어질지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소통과 협력이 거듭될 것이라고 정부는 강조했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얼어붙었던 한일 관계가 움직인 것은 분명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한일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절로 가까워지고 있다”고까지 자신했다. 미국 존 F 케네디(JFK) 재단은 양국 관계 개선에 기여했다며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올해의 ‘용기 있는 사람들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다만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 등 해결돼야 할 과제들이 많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같은 변수들로 한일 관계는 여전히 시험대에 놓여 있다.
중국과도 한 발짝씩 거리를 좁히는 모양새다. 외교부는 올해 안에 한국과 중국, 일본과의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이뤄지도록 물밑 협의를 계속했고 오는 25~26일 3국 국장·차관보급 인사들이 머리를 맞댄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3일 정부 대표로 항저우아시안게임 개막식을 찾아 중국에 관계 개선을 위한 ‘시그널’을 보낸다.
세계적인 ‘왕따’인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협력을 도모해 한반도 주변을 바짝 긴장시키고도 있어 유엔 등 국제사회와 훨씬 단단하게 힘을 모을 필요도 커졌다. 11월 개최지 발표를 앞둔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전, 내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기 위한 준비도 한창이다.
이러한 때일수록 국내 정치가 중요하다. 지난 18일 제1회 인천안보회의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한미동맹이 양국 정치로 흔들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했고, 허욱 위스콘신밀워키대 교수는 “신냉전으로 접어드는 지금 국내 정치와 경제적 상황이 외교관계에 더욱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안에선 긴밀한 소통은커녕 노력조차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급기야 국회에서 총리 해임건의안과 제1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나란히 처리되는 헌정사 초유의 일이 21일 벌어졌다. 한쪽은 부족한 명분으로 곡기를 끊어 버리며 ‘벽’을 쳤고 또 한쪽에선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대화할 ‘용기’조차 내지 않은 결과다. 점점 더 맥락과 접점을 찾으려 하지 않는 상황을 안에 두고 과연 밖에서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얼마나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가장 원론적인 표현들을 귀에 담을 때마다 기본적인 정치의 역할을 묻게 된다.
2023-09-2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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