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재건축 사업장에 무슨 일이
강남권 2000가구·사업비만 10조원 육박‘작년 1월 물량 배정 다툼’ 조합원 소송
1심 “분양권 신청 불허는 재산권 침해”
2018년 이후 신청한 단지, 재초환 대상
판결 확정 땐 관리처분인가부터 재신청
가구당 부담금 최대 20억원 더 늘 수도
서울행정법원이 지난달 16일 반포주공1단지 관리처분계획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린 여파로 재건축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사진은 2013년 촬영한 반포주공1단지 전경.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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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법원의 관리처분인가 취소 판결에 따라서 주민 이주는 당분간 연기합니다. 동의하십니까?”
주민들이 불만을 쏟아냈다. “네. 은행에서 법적 근거 없다고 대출도 안 해줄 텐데 어떻게 돈을 빌려 옮깁니까. 방법이 없죠.”
“판결이 확정되면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다시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적용에 따른 부담금이 조합원당 최대 20억원에 달할지도 모른다는 추산이 나왔습니다. 바로 항소할 건데 현행법에 따라 변호사를 입찰로 선정하게 돼 있어서 공고를 낼 겁니다.”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가 ‘소송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합원 분양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법원 판결이 만일 확정되면 재초환 대상이 되는 데다 조합원 추가분담금도 수억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돼 중대 갈림길에 서게 됐다. 더욱이 소송을 건 일부 조합원과 재건축 조합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갈등의 골마저 깊어지고 있다. 같은 날 반포주공1단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300명(조합원 주장)은 현 재건축 조합을 규탄하는 집회를 조합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서 열기도 했다.
●사업시행 인가 당시엔 재초환 적용 면제 유리
사업비만 총 10조원에 달하는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사업은 원래 강남권 정비사업 ‘최대어’로 꼽히며 순탄한 추진 과정을 밟아 왔다.
2011년 재건축조합설립추진위원회를 승인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재건축 준비에 들어갔고, 2013년 조합 설립 후에는 자연스레 정비업계 관심 단지로 떠올랐다. 서울 재건축의 ‘노른자’로 꼽히는 강남권(서초구 반포동)인 데다 가구수도 2000가구를 넘는 대규모였고 사업비 금액만도 국내 최대 액수여서다.
이후 2017년 9월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2017년 말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했을 때까지만 해도 재건축 추진은 순탄했다. 특히 정부가 2018년 12월 31일 이전에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신청한 재건축 사업자는 재초환 적용을 면제하기로 했는데 세금 부담을 피해 잔치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난해 1월 조합원 267명은 조합원 물량의 평형 배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어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전용면적 107m² 조합원들은 ‘59m²+115m²’까지만 신청 가능하다고 조합으로부터 공지를 받았는데 일부 조합원들에게는 ‘59m²+135m²’ 분양 신청을 허용해 줬기 때문에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내용이었다. 법원은 지난달 16일 “분양 신청 자체를 전면적으로 불허하는 것은 조합원의 재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조합 측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조합 관계자는 1일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따라 1+1 분양은 자기가 받은 감정평가액 이하로만 신청할 수 있는데 107m² 조합원이 당시에 로열층으로 구성된 59m²+135m²를 받게 되면 평가액을 초과해 1순위 자격이 취소될 우려가 있었다”며 “이 같은 위험을 줄 수 없어서 선택하지 말라고 공지한 것이고, 특히 문제가 되면 재분양 신청을 다시 받겠다고도 수차례 밝혔다”고 반박했다.
문제는 재초환 적용 여부다. 1심 판결이 대법원까지 유지된다면 조합은 관리처분계획을 다시 수립해 담당 구청에 신청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2018년 1월 1일 이후 신청한 단지는 모두 환수 대상이어서다. 조합 측은 가구당 최대 20억원(32평 12억원, 42평 15억원, 60평 18억원)에 달하는 재초환 부담금을 내야 한다고 조합원들에게 공지했다. 설계가 바뀌게 되면 조합원 추가분담금도 늘어난다. 당장 10월로 예정된 이주를 포함한 사업 일정도 전면 중지됐다.더욱이 재건축 조합이 최근 법원의 관리처분인가 취소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조합 측과 소송을 제기한 비대위 간 2차 격돌이 예고돼 내부 갈등은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조합은 지난달 27일 대의원회의를 열고 항소심 변론을 맡을 소송대리인 선임 절차에 나섰다. 다만 조합은 재판 절차를 이어 가는 한편 원고 측 조합원들과의 대화 통로도 열어 놓는다는 입장이다. 막대한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조합 집행부와 소송에 참여한 조합원들 사이에 막판 극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추가 이주비 이행” vs “2심서 뒤집을 것”
하지만 아직은 견해차가 크다. 비대위는 “조합이 시공사 선정 당시 현대건설이 약속한 무이자 5억원과 추가 이주비 20% 대출을 이행하게 해야 한다”며 “조합은 현대가 아닌 주인인 조합원을 위해 일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비대위원은 “재초환 부담금도 액수만 밝혔지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산출된 것인지에 대해선 빠져 있어 신뢰하기 어렵다”며 “소송 취하를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오득천 재건축 조합장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관리처분이 진행된 만큼 다소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 1심 판결을 뒤집겠다”고 반박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재건축 단지는 지위양도 금지, 안전진단 강화, 재초환, 분양가 상한제 등 단계별 허들이 워낙 많다”면서 “반포주공처럼 조합원 수가 많은 경우 사업 단계에서 소송까지 결부되면 정비 사업 자체가 지지부진하게 느려지거나 상당히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2019-09-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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