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코치서 사령탑으로 코트 지휘하는 전희철 SK 감독
프로농구 서울 SK 전희철 감독이 경기 용인 SK 체육관에 전시된 시즌별 사인볼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고 있다. 수석코치 10년 명찰을 떼고 신임 사령탑으로 7일 첫 팀 훈련을 지휘한 그는 “재료도 레시피도 다 나와 있으니 조리 과정만 남았다”고 했다.
‘에어본’이라는 별명이 붙은 전 감독도 그 중 한 명이다. ‘에어본’은 강습 낙하 침투를 주임무로 하는 공수부대(원)을 이르는 말이다. 7일 경기 용인 SK 체육관에서 만난 전 감독은 “한 여성팬이 ‘에어 희철’이라 쓴 플래카드를 경기장에 들고 다녔다. 마이클 조던의 닉네임 ‘에어 조던’을 본 뜬 건데 이게 부르기 쉬운 세 음절의 ‘에어본’으로 바뀌었다”고 기억했다.
낙하 지형을 가리지 않는 ‘에어본’처럼 전 감독도 코트 내·외곽을 가리지 않았다. 농구대잔치 당시 경기가 뒤집힐 조짐이 보이자 혼자 드라이브인 2개와 덩크슛, 3점슛까지 연속 9점을 뽑아내 기어코 승기를 잡은 장면을 떠올리면 그가 왜 ‘에어본’인지 짐작할 수 있다.
1996년 실업팀 동양제과에 입단한 뒤 이듬해 프로농구가 출범하며 대구 동양 멤버가 된 전 감독은 2001~02시즌 팀의 첫 챔피언 등극을 이끈 뒤 전주 KCC를 거쳐 2003년 SK에 둥지를 튼다. 그러나 은퇴가 빨랐다. 그는 “허벅지 부상 때문이었다. 2~3년은 더 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코트를 떠났다. 그때 나이 서른 여섯이었다”고 돌이켰다.
전 감독은 “2군 감독에 여자팀 감독 제의까지 받았다. 그런 선택의 갈림길에 선 적이 없었다. 고민하느라 두 달 동안 세면대가 새까매질 정도로 탈모가 왔다”며 “결국 제 등번호 13번의 영구 결번을 지켜보면서 코트와 작별했다”고 말했다.
‘에어본’의 화려한 시대를 끝낸 그는 SK 전력분석관, 운영팀장 등을 맡아 코트 바깥에서 3년 가까이 서성댔다. 평생 해본적 없는 접대까지 해야했다. 전 감독은 “갑자기 이방인이 된 것 같았지만 차라리 한꺼풀 벗은 느낌이었다. 농구 선수로서 ‘나 밖에 몰랐었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그 시간이 향후 10년 지도자 경력에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2011년부터 문경은 전 감독과 함께 수석코치로 10년을 꼬박 같이 했다. 문 전 감독이 연세대라면 전 코치는 고려대 출신으로 스타일까지 다른 탓에 ‘오래 못 간다. 분명히 깨진다’는 우려가 빗발쳤다. 지금은 ‘어떻게 10년을 동거했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했다.
전 감독은 “코트 밖에서 아픈 세월을 보내고 나니 인생이란게 내가 만들어서 가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농구 인생을 억지로 만들지 말고 물처럼 흐르듯이 가라고 말한다”고 했다.
지난 시즌 팀의 부진(정규 8위)을 외국인 선수 농사 실패 탓으로 진단한 전 감독은 “수석코치의 10년 안목을 살리겠다”며 “올 시즌 목표는 일단 4강으로 잡았다. 재료가 어떤 건지 알고 레시피는 이미 나와있는 거니까 조리 과정만 남았다. 그게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2021-06-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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