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몬스터’ 된 포켓몬

사람 잡는 ‘몬스터’ 된 포켓몬

김희리 기자
김희리 기자
입력 2016-07-15 01:36
수정 2016-07-15 03:19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포켓몬고’로 깜짝 특수 속초 르포

명소 곳곳 캐릭터 등장, 짜릿 향수 자극… 새벽부터 밖으로
주민들 “관광객 늘 것” 반겨
몰입하다 자전거와 충돌할 뻔
해외 교통사고 속출… 방송사고도
경찰, 휴가시즌 상시순찰 강화

이미지 확대
서울신문 김희리 기자가 14일 오전 속초해수욕장 인근에서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고’를 실행하자 조개구이집 계단에 게임 캐릭터 ‘미뇽’이 등장했다.  속초 김희리 기자 hihit@seoul.co.kr
서울신문 김희리 기자가 14일 오전 속초해수욕장 인근에서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고’를 실행하자 조개구이집 계단에 게임 캐릭터 ‘미뇽’이 등장했다.
속초 김희리 기자 hihit@seoul.co.kr
새벽잠을 물리치고 길을 나섰다. 승용차로 3시간 남짓 달려간 끝에 14일 오전 7시 40분쯤 짙은 물안개를 뚫고 한국의 ‘태초마을’, 강원도 속초에 도착했다. 서울에서는 내내 잠들어 있던 스마트폰의 ‘포켓몬고’ 게임 화면이 이곳에선 거짓말처럼 깨어났다. ‘위치를 찾을 수 없다’는 표시는 사라지고, 화면 속 지도에 하나둘 주변 지명이 떴다. 마침내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기자가 이곳에 달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태초마을은 ‘포켓몬스터’의 모험이 시작되는 가상의 마을이다. 미국 나이앤틱사는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와 증강현실(AR) 기술을 결합한 게임 ‘포켓몬고’를 지난 7일 내놨다. 미국, 유럽 등지에서 광풍이 일고 있지만 구글 지도를 이용하는 게임이라, 구글에 지도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한국에선 실행할 수 없다. 그러다가 만난 희소식, 속초에선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이곳에 게임 유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소문대로 이날 속초 곳곳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 전체가 게임의 배경이기 때문에 좁은 장소에 군중들이 바글거리지는 않고, 명소로 불리는 곳에는 유저 20~30명이 몰려 있었다. 주변 상인들은 자정이 지나도 게임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놀라기도 하지만 상권에 도움이 될 거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첫 목적지인 속초 동부고속버스터미널의 ‘포켓스톱’에 들렀다. 포켓스톱은 게임 유저들이 포켓볼을 비롯한 무료 아이템을 얻는 곳이다. 오전 8시,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작은 카페가 ‘포켓스톱’으로 설정돼 있어 게임 이용자들이 몰렸다.

터미널 근처에서 10년째 파라솔 대여업을 하는 김상열(38)씨는 “도대체 무슨 게임인데 사람들이 새벽부터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거리를 헤매느냐”고 물었다. 어제부터 밤낮없이 젊은이들이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사람이 많으니 장사하는 사람이야 좋다”면서 웃었다.

포켓몬고는 단순히 캐릭터(포켓몬)를 잡는 게임이 아니다. 곳곳에 유저를 몰입시키는 장치가 숨어 있다. 버스터미널 인근 인도에서는 비둘기 포켓몬인 ‘피존’이, 바닷가에는 ‘잉어킹’과 ‘발챙이’ 등 물 타입 포켓몬(수상생물을 테마로 만든 포켓몬)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희귀한 포켓몬으로 불리는 뱀 모양의 ‘미뇽’이 조개구이집 계단에 나타날 때는 탄성이 흘러나온다.

현실의 명소 ‘속초 엑스포공원’ 전망대는 게임 속 명소 ‘체육관’(포켓몬 대결장)이 됐다. 공원 전망대에 다다르면 게임에서 레벨5 이상의 유저만 사용하는 체육관에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 그동안 잡은 포켓몬으로 상대와 대결을 펼칠 수 있다. 기자는 불과 30초 만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완패를 당했다.

이곳에서 만난 포켓몬스터 게임 인터넷방송 BJ 권영민(23)씨는 “다양하고 귀여운 동물 캐릭터가 등장해 자극적인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게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대구에서 온 김정인(26·여)씨는 “서식지에 사는 생물을 마주치는 것처럼 바닷가에서는 물 포켓몬이 나오고 산에서는 육지 포켓몬이 나와서 무척 신기했다”며 “포켓몬이랑 같이 사진도 찍을 수 있어서 정말 현실로 착각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미지 확대
‘포켓몬고’가 미국, 유럽 등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가운데 사고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오번에서 한 운전자가 차를 몰면서 게임을 하다가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샌프란시스코 연합뉴스
‘포켓몬고’가 미국, 유럽 등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가운데 사고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오번에서 한 운전자가 차를 몰면서 게임을 하다가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샌프란시스코 연합뉴스
엑스포공원에서 청초호를 따라 난 산책길 곳곳은 포켓스톱과 포켓몬들로 북적였다. 오후가 되도록 정신없이 스마트폰 화면 속에 빨려들었다. 갑자기 ‘끼익’ 하는 브레이크 소리와 짧은 비명에 고개를 들었다. 바로 앞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자전거를 세우고 놀란 표정으로 서있었다. 남성도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사고는 면했지만 정신이 번쩍 든 순간이다. 이날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뉴욕주 오번에서 한 자동차 운전자가 운전 도중 포켓몬고를 하다가 나무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포켓몬고 때문에 발생한 첫 대형 사고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15세 소녀가 포켓몬을 잡으려고 교차로를 횡단하다가 자동차에 부딪히기도 했다. 플로리다 지역방송 WTSP 뉴스에선 앵커인 앨리슨 크로프가 날씨예보 중 포켓몬고를 하면서 지나가는 바람에 ‘방송 사고’를 내기도 했다.

속초경찰서 관계자는 “아직까지 포켓몬고와 관련해 사고나 민원이 접수된 것은 없다”면서도 “다가오는 주말에 관광객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포켓몬고 명소들에 대해 상시 순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속초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2016-07-15 1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추계기구’ 의정 갈등 돌파구 될까
정부가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 구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기구 각 분과위원회 전문가 추천권 과반수를 의사단체 등에 줘 의료인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의사들은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없이 기구 참여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 추계기구 설립이 의정 갈등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다
아니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