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39> 배추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39> 배추

입력 2015-05-28 23:22
수정 2015-05-28 23:5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식탁위의 ‘웰빙 주역’ 한국인의 ‘사철 보약’

배추는 원산지가 지중해 연안인 잡초성 채소로 2000년 전 중국으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6세기부터 채소로 이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향약구급방’에 원시형 배추를 뜻하는 ‘숭’(?)으로 처음 기록됐다. 당시엔 식용이 아닌 약용으로 재배됐다. 18세기 전까지 배추김치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배추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결구 형태의 배추’(윗부분이 벌어진 포기 배추) 종자가 중국에서 들어온 시기여서 배추는 매우 귀했다고 한다. 또 배추김치에 대한 기록은 농가월령가(1816년)에 처음 등장한다. 지금의 빨간 양념 배추김치가 나온 것도 불과 100여년에 불과하다.

이미지 확대
배추밭
배추밭


이미지 확대
배추만두
배추만두  


이미지 확대
배추찜
배추찜  
이미지 확대
밀푀유나베
밀푀유나베  
이렇게 ‘귀한’ 배추가 어떻게 끼니마다 애용하는 ‘흔한’ 배추로 바뀌게 되었을까. 농촌진흥청의 전신인 ‘권업모범장’과 고 우장춘 박사가 큰 역할을 했다.

배추는 네 개의 꽃잎이 열십자로 피는 ‘십자화과’ 작물의 하나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은 개체에서 꽃대가 올라오고 꽃이 피어 종자를 맺는다. 가을에 재배한 뒤 품질이 우수한 개체의 뿌리를 잘 보관해 추운 겨울에 얼어 죽거나 썩지 않도록 관리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권업모범장은 1900년 한반도에서 재배가 잘 되며 김치의 맛을 좋게 하는 ‘서울배추’ 품종을 개발했다. 그 전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반결구배추가 토착화돼 탄생한 ‘개성배추’가 원조였다. 당시 채소 재배 기술이 뛰어난 개성을 중심으로 재배됐다.

우 박사는 해방 직후 참혹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고 식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채소로 배추를 골랐다. 김치는 배추, 소금, 젓갈 등 간단한 식재료로 국민의 영양을 개선시킬 수 있는 부식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가장 큰 문제였던 십자화과 채소의 종자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 한국계 종자 회사의 기반을 만들어줬다. 십자화과 채소는 수정을 억제하는 ‘자가불화합성’이라는 특성이 있는데 이를 해소한 것이다.

우 박사가 육성한 최초의 일대잡종(一代雜種) 배추 품종인 ‘원예1호’와 ‘원예2호’는 획기적인 기술이 적용된 것이다. ‘개성배추’와 ‘서울배추’에 비해 수확량도 많고 맛도 좋았다. 병충해에도 강해 농민들의 호응이 좋았다. 다만 종자 생산을 위해서는 육종 지식과 재배 노하우가 있는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했다. 1960년대 3대 종자 회사인 우리상회와 중앙종묘, 흥농종묘에서는 전문가 영입과 재료 수집, 품종 개발에 박차를 가해 다양한 일대잡종의 배추 품종을 개발했다. 이로써 식민지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의 국민들에게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기본 부식인 배추가 자리를 잡게 됐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배추 품종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종자 수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배추는 원래 선선한 기후에서 잘 자라므로 가을에만 재배됐다. 하지만 배추 수요가 늘면서 더운 계절에도 자랄 수 있는 품종 개발이 필요하게 됐다. 1973년 여름철에도 비교적 기온이 선선한 고랭지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한 ‘내서백로’ 배추가 개발됐다. 봄철에도 재배 가능한 ‘노랑봄’, 겨울이 비교적 포근한 남부 해안지대에서 눈이 오더라도 생산이 가능한 ‘동풍배추’가 개발됐다.

사계절 재배가 가능한 품종을 육성하는 기반을 조성한 것이다. 여름배추 품종이 개발되기 전에는 겨울이 오기 전 어마어마한 양의 김장을 담갔다. 과거 기록 사진을 보면 거리마다 배추를 쌓아두고 김장을 해 땅속에 묻어두는 광경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일년 내내 싱싱한 배추를 공급받을 수 있어 지역마다 김장을 조금씩 한다.

배추는 계절에 따라 재배되는 지역이 다르다. 1~5월 시장에 나오는 배추는 대부분 전남 해남과 진도에서 수확한 겨울배추다.

이 지역은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기간이 짧다. 눈이 와도 배추가 싱싱하게 자랄 수 있어 초봄까지 재배한다. 겨울배추는 단맛이 강한 게 특징이다. 배추는 0도 근처의 저온에서 자라면 추운 날씨에 견디기 위해 당분을 축적한다. 육질도 단단해서 김장을 담그면 맛이 좋고 잘 물러지지 않는다.

6~7월에 배추를 샀다면 전남과 경남 일부 지역에서 난 봄배추다. 수확을 앞두고 기온이 오르고 비가 많이 와서 맛이 조금 싱거울 수 있다. 재배 초기에 온도가 낮으면 꽃대가 올라오는 문제가 생긴다. 배추과 채소는 잎이 5장이 안 되는 어린 시기에 10도 이하의 저온에서 일주일 정도 자라면 꽃대가 나온다. 꽃대가 올라오면 잎이 억세지고 맛이 없어져 김치를 담그기 어렵다. 봄배추를 초봄부터 기온이 높아지는 남부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는 이유다. 최근에는 고소한 맛을 내는 품종이 개발돼 겨울배추와 큰 차이가 없다.

8~10월에 파는 배추는 강원, 경북, 전북 등의 해발 700m 이상 지역에서 재배된 여름배추다. 경북과 전북의 여름배추는 8월부터 수확하고, 강원 지역의 고랭지 배추는 9월에 딴다. 일반적으로 고랭지 배추는 맛이 더 고소하고 잎이 얇은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여름배추는 기르기 힘들다. 기온이 높고 가뭄, 병해충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2010년 배추 파동도 한여름에 이상 고온과 가뭄이 겹쳐 배추가 썩어버린 탓에 발생했다.

11~12월에는 전국 어디서나 손쉽게 기를 수 있는 가을배추가 나온다. 제주에서 강원까지 9월 상순에 모종을 심으면 2~3개월 만에 속이 꽉 찬 배추를 딸 수 있다. 가격도 싸고 수확 시기에 기온도 낮아 품질이 좋다. 전통적으로 김장에 써 온 배추도 가을배추다. 최근에는 온난화 때문에 심는 시기를 조금 늦춰야 더 튼튼한 배추를 수확할 수 있다.

한국의 봄배추는 우리보다 배추를 먼저 먹은 중국에서도 개발하지 못한 품종이다. 그 우수성이 중국에 알려지면서 2000년대 초부터 대량 수출했다. 우리 김치용 배추 품종은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아 일본에도 매년 상당량의 종자를 수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일부 나라에도 팔린다.

배추에는 비타민, 미네랄, 섬유질, 시스틴 등이 풍부해 건강에 좋다. 특히 잎 부분에 비타민A와 C가 많다. 감기 예방과 피부 미용 효과가 있는 비타민C가 배추에는 100g당 45㎎이나 들어 있다. 100g만 먹어도 비타민C 하루 권장량을 채울 수 있다. 또 비타민A로 변하는 카로틴과 칼륨, 칼슘, 철분 등의 미네랄도 많아 고혈압을 예방한다.

동의보감에는 배추가 ‘숭채’(?菜)로 나오는데 ‘음식을 소화시키고, 기를 내리며, 가슴속 열을 내리고, 소갈을 멎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배추 특유의 구수한 맛을 내는 ‘시스틴’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숙취 해소를 돕는다. 톡 쏘는 맛을 내는 글루코시놀레이트는 항암, 항균 기능이 있다. 시력 보호 효과가 있는 ‘루테인’도 들어 있다. 최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P)에서 만성질병에 걸릴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채소와 과일을 선정했는데 배추가 물냉이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각종 병해충을 이겨내는 배추 품종을 개발하는 등 육종 연구를 계속해 왔다. 올해까지 10여개의 국산 배추 품종을 개발했다. ‘원교20037호’는 항암 기능성 물질인 글루코시놀레이트의 함량이 다른 품종보다 월등히 많다. 온난화와 과잉 생산으로 인한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재배 기간이 짧은 배추도 개발했다. 신품종인 ‘원교20044호’는 속잎이 은은한 귤색으로 독특하다. 가을 햇살 아래에서는 황금색처럼 보여 ‘황금배추’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수형 농촌진흥청 채소과 농업연구사

■문의 golders@seoul.co.kr
2015-05-29 2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