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 원조 노맥의 하소연
노가리 골목을 찾은 시민들이 노천 호프를 즐기고 있다.
지난 10일 노맥축제를 찾은 중년 남성들이 맥주잔을 부딪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타일, 도기, 인쇄, 공구 상가 등이 있는 을지로3가 일대에 노가리 맥주 골목이 형성된 건 1980년 이곳에 ‘을지OB베어’가 문을 열면서부터다. 창업주 강효근(92)옹이 당시 생맥주 체인인 OB베어 서울 2호점으로 시작하며 노가리와 고추장소스 조합의 시초를 만들었다. 욕심 없이 같은 자리에서 서민을 맞겠다는 창업주의 철학을 딸 강호신(59)씨가 이어받아 39년이 지났지만 6평 가게의 모습은 온전히 유지되고 있다. 노가리 골목에서만 볼 수 있는 ‘천 원짜리 노가리’ 안주 역시 일선에서 물러난 강 옹이 신신당부하고 간 부분이다.
저녁이 되면 간이 테이블과 의자가 골목으로 나와 셔터를 내린 공구 골목을 배경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2년 전부터 중구청은 노가리 골목에 옥외영업을 허용했다. 이 일대에 간이 테이블과 의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며 장관을 이룬다.
‘을지OB’ 창업주 강효근옹의 사위 최수영(64)씨가 냉장 숙성한 맥주를 잔에 따르고 있다
20여년째 노가리 골목을 찾았다는 이만성(64)씨는 “문화란 다양성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을지OB가 사라지면 이 골목엔 사실상 하나의 호프집밖에 남지 않는다. 원조집이 사라진 노가리 골목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며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을지OB가 있는 건물 라인엔 같은 이름을 가진 6개의 호프집이 존재하고 건너 라인은 재개발 이야기가 있었으나 반발에 부딪혀 현재 잠정적 중단 상태다.
을지OB가게 정문 옆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작년 8월에 수여한 백년가게 현판과 2015년도 서울시에서 수여한 서울미래유산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백년가게는 중기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음식점 등을 30년 이상 영위한 소상공인을 발굴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해 100년 이상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을지OB는 그 1호점이고, 올해 35곳이 추가되며 총 116곳으로 늘었다.
‘을지OB’는 연탄 화덕에 맨손으로 노가리를 굽는 강옹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2019-05-31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