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로 인해 반려동물과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동료들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 끝났던 점심시간은 부모님과 밥을 먹고 강아지 두 마리와 산책하는 시간이 됐다. 강아지들이 코로나 사태의 뜻밖의 수혜자가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일정 시간을 정해 놓고 반려동물의 부족한 활동량을 채워 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모니터를 보고 있는 시간이 좀 길긴 해도 “행복아” 부르면 쪼르르 달려오는 강아지의 애교에 절로 힘이 난다. 반려견과 함께 출근하는 직원들은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해소돼 업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직업 만족도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틀리지 않은 듯하다.
무엇보다 올해 열아홉 살이 된 복실이의 느리고 힘든 하루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사람 나이로 치면 90대인 복실이는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린다. 지난해만 해도 절뚝거리며 걸을 수 있었지만 이젠 서 있기도 힘들어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보내는 녀석은 대소변이 마려울 때마다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 도움을 청한다. 유심히 지켜보다 일으켜 세워 볼일을 보게끔 하는데 다리 힘이 없어 손으로 받쳐 주지 않으면 철퍼덕 주저앉아 찝찝함에 운다. 이런 녀석을 두고 현관을 나설 때 불편해지는 마음을 애써 누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다.
하루 한 시간의 산책은 일 년으로 치면 고작 15일. 나머지 350일의 대부분은 개들이 주인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거의 매일 한 시간씩 산책을 한다며 좋은 주인이라고 뿌듯해했지만 거의 매일 몇 시간을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개에 비할 수 없을 것 같다. 세계적인 위기가 닥친 줄도 모르고 그저 함께 있어 신이 난 반려동물을 보며 사회생활을 핑계로 가족이 전부인 녀석들에게 자주 무심했었음을 느낀다.
모두가 힘들지만 힘을 합쳐 이 위기를 이겨냈을 때 달라질 풍경이 내심 기대가 된다. 개인 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손을 자주 씻고, 거리에 침을 뱉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기침 증상이 있을 땐 마스크를 쓰고 출근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로 돼 있지 않을까.
재택근무가 가능한 업무임에도 출근하는 게 마땅하다 여겼던 스스로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출퇴근 지옥철에 몸을 밀어 넣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고 편한 옷을 입고 편한 공간에서 업무를 보는 것이 꽤나 효율적이라는 걸 느낀다. 앞으로는 출근의 형태도 보다 다양해지지 않을까. 아이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고 언젠가는 함께 출근해도 어색하지 않은 날이 올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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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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