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 <1부>] ⑤ ‘10년 대계’를 설계하라-이스라엘 벤처기업의 요람 ‘요즈마 펀드’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 <1부>] ⑤ ‘10년 대계’를 설계하라-이스라엘 벤처기업의 요람 ‘요즈마 펀드’

입력 2013-08-05 00:00
수정 2013-08-0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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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투자사 공동출자로 벤처지원 경쟁… 펀드 10년새 60배 성장

뙤약볕이 따갑게 내리쬐된 지난달 9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한 시립도서관. 이름이 무색하리만치 다양한 나이대의 이용자들이 노트북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난상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 도서관은 벤처기업을 만들려는 이들을 돕기 위한 창업지원센터(BI·Business Incubator) 역할을 함께하는 곳이었다. 창업자가 아이디어 심사만 통과하면 무료로 창업 공간을 쓸 수 있고 벤처 투자 알선 등 각종 서비스도 제공받을 수 있다. 입을 꾹 다문 채 수험서 공부에 여념이 없는 우리 학생들의 도서관과는 확연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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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직접 만든 모바일 현미경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연계해 간단히 신체 내 암 세포를 찾아내는 키트를 개발한 데이비드 레비츠(35)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자신의 스타트업(신생벤처기업)인 ‘모바일OCT’를 성공시키기 위해 텔아비브를 찾았다. 실리콘밸리 같은 좋은 창업 환경을 마다하고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묻자 “자가용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실리콘밸리와 달리 텔아비브는 자전거 한 대만 있으면 반나절 안에 기술연구소와 투자사, 관공서, 변리사·변호사 등을 모두 만나고 돌아올 수 있어 세계에서 창업 생태계가 가장 좋은 도시”라고 웃으며 말했다.

기자와 동행하던 이스라엘 출신 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지사장에게 이스라엘 창업 생태계의 성공 비결을 묻자 그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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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어렵겠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이스라엘에서는 한국의 벤처 환경을 부러워했어요. 당시 벤처 붐을 타고 한국에서 1만 개가 넘는 벤처기업들이 쏟아져 나왔잖아요. 지금 이스라엘을 배우려 하는 한국으로선 정말 격세지감이 들 수밖에 없겠죠.”

그렇다면 한국의 창업 생태계를 부러워하던 이스라엘이 세계 최고 수준의 벤처 생태계 단지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에 본격적인 벤처 창업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1991년 옛 소련 해체를 전후해 그 지역에 흩어져 살던 75만여명의 유대인들이 돈과 자유를 찾아 이스라엘로 넘어왔다. 당시 인구가 700만명도 되지 않던 나라에 100만명 가까운 이민자들이 순식간에 유입되면서 이스라엘은 실업률 급등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았다.

당장 이들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정부는 과학자나 엔지니어 등 고급 인력들에게 창업을 권장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 내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스라엘 최초로 BI를 세우고 벤처 투자 관련법도 정비해 나갔다. 투자자에게 사업 실패에 따른 위험 부담을 짊어지게 하고 실패한 사업가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 이스라엘 특유의 창업 시스템도 이때 완성됐다.

이스라엘 창조경제 구축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1993년 설립된 ‘요즈마 펀드’다.

요즈마 펀드는 이스라엘 정부(40%)와 민간(60%)이 공동출자해 설립한 벤처캐피털이다. 이스라엘 산업통상자원부 수석과학관을 지냈던 이갈 에를리히(현 요즈마그룹 회장)가 직접 설계했다.

이 펀드의 가장 큰 특징은 정부가 개별 기업들에 직접 투자하기보다 경험 많은 민간 투자회사들을 파트너로 끌어들인 뒤 서로 경쟁시켜 최대한 많은 벤처기업에 자금이 수혈되도록 배후에서 움직였다는 데 있다. 요즈마 그룹은 각각의 펀드에 투자자로 참여해 개별 펀드 운용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개별 펀드사들은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 많은 신생기업을 발굴해 투자했고, 해당 기업이 성공해 큰 수익을 거두면 이를 더 많은 신생 기업들에 재투자해 선순환되게 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생태계 플랫폼’ 역할을 한 것이다.

개별 펀드사들이 장기간 좋은 성과를 내면 요즈마 지분을 정리해 정부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지분을 미끼로 펀드사들에게 끊임없이 배당금을 받아낼 수도 있었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스스로 해체를 선택했다. 마중물로서의 역할이 요즈마 펀드의 책임이라고 본 것이다. 우리 같았으면 ‘신이 내린 공기업’으로 계속 남겨뒀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요즈마 펀드가 시도한 ‘매칭 펀드’ 방식도 큰 성과를 거뒀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전쟁 지역인 이곳에 선뜻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해외 펀드사는 많지 않았다. 그때 요즈마는 외국의 벤처 펀드가 투자한 금액만큼 자신도 같은 액수를 투자해 실패 위험을 반으로 줄여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해외 펀드 자금에 세금을 면제해 주는 인센티브도 제공했다. 이런 노력들이 더해지면서 유대계 자금을 중심으로 해외 투자자들이 서서히 이곳에 발을 붙이기 시작했다.

1억 달러(약 1123억원)를 갖고 시작한 요즈마 펀드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요즈마 펀드가 초기 80만 달러(약 9억원)씩 투자했던 10곳의 펀드사는 현재 40억 달러(약 4조 4920억원)를 굴리며 수백개의 벤처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요즈마 펀드가 직접 투자했던 15개의 벤처기업 가운데 9곳이 상장되거나 글로벌 기업에 인수되며 성공했다.

1991년만 해도 단 두 곳에 불과했던 이스라엘 벤처캐피털은 요즈마 펀드 출범 이후 70여곳으로 늘었다. 해외에 사무실을 둔 펀드들까지 합치면 300곳이 넘는다. 이를 통해 해마다 20억 달러(약 2조 2460억원) 안팎의 자금이 벤처기업에 투자된다.

1991년만 해도 5800만 달러(약 651억원)에 불과했던 벤처캐피털 규모도 10년 뒤인 2000년엔 33억 달러(약 3조 7059억원)로 60배 가까이 커졌다. 같은 기간 이스라엘의 IT 관련 매출도 16억 달러(약 1조 7968억원)에서 125억 달러(약 14조 375억원)로 급증했다. 10년의 뚝심있는 정책이 이스라엘을 ‘진흙 속의 연꽃’으로 바꿔놓았다.

주이스라엘 대사관 김영태 산업관은 “우리나라도 미라벨리스(1997년 거액에 인수합병된 이스라엘 벤처기업)처럼 대기업과 벤처 간 ‘상생의 M&A’ 사례를 만들어 내 창업 생태계 구축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텔아비브(이스라엘)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2013-08-0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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