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산북 잇는 관광젖줄… 해발 600m 숲터널 장관
제주 사람들은 서귀포를 산남이라고 부른다. 한라산의 남쪽이라는 뜻이다. 한라산의 북쪽 산북은 제주시다. 지금은 자동차로 1시간이면 족히 달려오고 달려가지만 한라산을 사이에 두고 산남과 산북에는 미묘한 감정의 골이 흐른다. 홀대받고 있다는 산남 사람들의 푸념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개발이나 투자가 제주도의 행정·경제의 중심지인 산북에만 집중돼 산남은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다는 주장이다. 아직도 산남의 중학교를 졸업하면 산북의 고등학교로 유학을 오는 학생들이 많다. 여전히 산북사람들은 산남사람들을 촌사람이라고 부른다.516도로 숲터널 구간
516도로는 한라산 동쪽 해발 750m 능선을 넘어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연결하는 횡단도로다. 제주시 관덕정에서 현 서귀포시청까지 이르는 43㎞구간으로 이 도로가 처음 개설된 것은 1932년이다.
당시 일제가 군사 목적과 한라산 산림수탈 목적으로 한라산에 임도를 개설했다.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군부정권은 산남과 산북 횡단도로 건설을 계획했고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당시 제주도의 차량 대수가 300여대에 불과해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한라산 횡단도로 건설 무용론이 터져 나왔으나 군부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516도로는 1969년 10월 1일 또 한번 개통식을 갖게 된다. 당시 전 구간에 포장공사가 끝나지 않았으나 곧 있을 대통령선거를 의식해 개통식을 다시 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후 516도로를 따라서 제주시청, 세무서, 법원 등 관공서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 제주여중고, 중앙여고, 서귀포 시청 등이 속속 들어섰다. 제주의 1호 골프장인 제주골프장도 516도로 주변에 조성됐다.
516도로는 지금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아마도 탄생하지 못할 길이었다. 한라산을 훼손한다며 환경단체가 반대했을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516도로가 생기고 나서 제주의 주 산업인 관광산업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제주 관광도로 1번지
516도로 개통은 제주시에서 서귀포시까지 차량으로 5시간 걸리던 것을 1시간 30여분으로 단축시킨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서귀포 등 산남 사람들은 제주도의 행정, 경제 중심지인 제주시 왕래는 물론 산북의 제주공항·제주항과도 접근성이 나아져 육지 나들이도 한결 편리해졌다. 516도로가 개통되기전에 제주에서 서귀포로 가려면 타원형의 외곽 일주도로를 따라 빙 둘러가야만 했다.
516도로 개통은 제주 관광산업 발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제주마 방마지 부근
516도로변에 들어선 대표적인 관광지는 제주시 아라동 탐라목석원이다. 1971년 문을 연 탐라목석원은 화산섬 제주의 기암괴석과 괴목 등을 전시하면서 스토리텔링을 처음 도입해 제주 관광객의 필수 방문 관광지였다.
탐라목석원은 제주돌문화공원이 생기면서 전시물 등을 기증, 지난해 8월 문을 닫기까지 40여년간 516도로와 함께 호흡을 같이했다.
●아름다운 산길로 재탄생
한라산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한라산을 횡단하는 516도로변의 풍경도 계절마다 다른 한라산의 속살을 보여준다.
국내 유명 자동차의 광고를 찍기도 했던 해발 600m 숲 터널은 봄부터 가을까지 하늘을 가리는 장관을 이룬다.
마치 깊은 숲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이곳은 전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산길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516도로를 따라 성판악에는 세계자연유산 한라산 탐방객들이 사계절 붐빈다. 한라산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면서 516도로를 따라 성판악에서 백록담에 오르려는 탐방객들이 크게 늘어났다. 제주시 용강동 516도로변에는 지난해 한라생태숲이 새로 들어섰다. 초지였던 이곳에 30여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자연상태의 숲으로 복원해 놓았다. 516 도로변 제주마 방마지에는 조랑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제주에서만 볼수 있는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한라산 노루개체수가 늘어나면서 516도로를 달리다 노루를 불쑥 만나기도 한다.
김명문(76·제주시 아라동)씨는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한라산에 도로를 뚫는다고 해 당시에는 미친 짓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결과적으로 516도로는 제주 발전을 앞당긴 효자 도로”라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2010-03-22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