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 학예연구사 논문...가장 안쪽에 배치, 현재는 연못
경성감옥서 신축 전경 평면도. 빨간색 원이 서대문형무소 첫 사형장으로 추정된다. 서울역사편찬원 제공
‘1908~1945년 서대문형무소 사형 집행의 실제와 성격’을 쓴 이승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학예연구사는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경성감옥서 신축 전경 평면도’로 이를 추정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서대문형무소의 최초 사형장은 10옥사와 11옥사 중간에 있었다. 일제는 경성감옥을 세울 때부터 사형장을 배치했고 사형은 ‘감옥 안에서 비공개’로 한다는 원칙에 따라 가장 안쪽에 존재했다. 감옥과 이어진 문은 형무소 직원과 사형수가 이용했다. 바깥으로 난 문은 사형 집행이 끝난 뒤 시신을 옮기는 용도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첫 사형장 자리에는 현재 작은 연못이 있다. 사형장을 만들면서 시신을 수습하고자 파 놓은 지하 공간을 이용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서대문형무소의 두 번째 사형장은 감옥 남서쪽에 지었으며 1987년까지 사용됐다. 이곳은 일제가 건립한 유일한 현존 사형장이다.
아울러 이 연구사는 일제강점기 통계 자료를 분석해 서대문형무소에서 1908∼1945년 사형당한 사람이 최소 493명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이는 일제가 집행한 전체 사형 건수의 36% 수준이다. 서대문형무소 사형 집행 인원은 연평균 12.9명이었지만 3·1운동 직전인 1909년에 7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 연구사는 “감옥 설립 초기에 의병 활동이 왕성했고 사법권을 확보한 일본이 엄격하게 처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논문은 서울역사편찬원 학술지 ‘서울과 역사’ 최신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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