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직시한 한강의 문장… 스톡홀름 물들였다

고통 직시한 한강의 문장… 스톡홀름 물들였다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입력 2024-12-10 03:11
수정 2024-12-10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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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 작품 낭독 ‘문학의 밤’
‘작별하지 않는다’ 함께 읊으며 흥취 흠뻑
한강, 비공개 오찬서 비건 스테이크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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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 지난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노벨박물관에서 전 세계 미디어를 상대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스톡홀름 연합뉴스
2024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 지난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노벨박물관에서 전 세계 미디어를 상대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스톡홀름 연합뉴스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스웨덴 스톡홀름의 쓸쓸한 겨울밤이 한강의 소설로 채워졌다. 8일(현지시간) 스톡홀름 시청 맞은편에 설치된 ‘돔 아데톤’ 바로 옆에서는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낭독하는 문학의 밤 행사가 열렸다. 추운 날씨에 이슬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모여든 70여명의 사람들이 문학의 흥취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한강의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의 일부가 각각 한국어와 스웨덴어로 낭독됐다. 한강에 앞서 이탈리아의 그라치아 델레다,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 프랑스의 아니 에르노 등 각국을 대표하는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 일부가 그들의 모국어와 함께 스웨덴어로도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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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의 사서 신미성씨가 8일(현지시간)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 위크’ 문학의 밤 행사에서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일부 대목을 한국어로 낭독하고 있다. 스톡홀름 오경진 기자
스웨덴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의 사서 신미성씨가 8일(현지시간)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 위크’ 문학의 밤 행사에서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일부 대목을 한국어로 낭독하고 있다.
스톡홀름 오경진 기자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눈의 이미지가 매우 중요한 소설이다. 한강도 이 소설을 쓰기 전 “성근 눈이 내리는 벌판을 걷는 꿈을 꿨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날 한국어로 읽힌 부분은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한국어판 309쪽이다. “밀도가 얼마나 낮은 눈인지, 내가 앉는 대로 끝없이 깊게 꺼져 내렸다. 격벽 같은 눈이 우리를 갈라놓았다.” 이 문장이 낭독되는 동안 현장에는 눈인지 비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마냥 흩날리고 있었다. 낭독자는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교민 신미성씨였다.

신씨는 행사 뒤 한강의 문학을 향한 스웨덴 현지의 관심과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부터 한강의 작품은 번역될 때마다 서평이 실렸고 스웨덴 평론가 중에서는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예견한 이도 있었다”면서 “현재 시립도서관에는 한강의 책을 빌리려는 대기 인원이 1000명도 넘는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는 비교적 젊은데다 여성 작가가 수상했다는 사실에 다들 놀라워하고 있다”면서 “한국 작가 가운데 박상영, 김영하 등의 소설도 스웨덴에서 인기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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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 위크’ 문학의 밤 행사에서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스웨덴어 번역본을 낭독하는 현지 배우 안나 시세. 스톡홀름 오경진 기자
8일(현지시간)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 위크’ 문학의 밤 행사에서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스웨덴어 번역본을 낭독하는 현지 배우 안나 시세.
스톡홀름 오경진 기자


같은 문장을 배우 안나 시세가 스웨덴어로 낭독했다. 스웨덴어판 ‘작별하지 않는다’ 속 문장은 그 나름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어로 읽었을 때 느껴진 호흡과 운율이 그리 손상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날 한강은 자신의 책을 출간한 국내외 출판사 관계자 10여명과 함께 프랑스 식당에서 비공개 오찬을 가졌다. ‘채식주의자’가 대표작인 한강의 메뉴 선택은 야채수프와 비건용 스테이크 등 ‘채식’이었다. 저녁에는 검은색 긴 원피스를 입고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콘서트에 참석해 구스타브 16세 국왕, 실비아 왕비 등과 함께 오페라 살로메의 아리아,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등을 감상했다. 스톡홀름 콘서트홀은 10일 노벨 주간의 절정인 시상식과 만찬이 개최되는 곳이다.
2024-12-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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