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대의 몸/잭 하트넬 지음/장성주 옮김/시공아트/456쪽/3만 2000원
현대의 제도·체계 기틀 된 중세
인간의 몸, 특별·신비하게 여겨
문학·예술·건축 등에 적극 활용
머리부터 발끝까지 ‘본질’ 찾아
왜곡 안 된 실제 시대상 파헤쳐
1485년경 제작된 판화. 비너스와 비슷한 형상의 프라우 미네가 열아홉 가지 방식으로 연인의 심장을 고문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중세 시대에는 심장을 ‘몸의 대변인’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시공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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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고정관념이 낳은 산물이다. 이런 불온한 관념을 낳은 원흉이 누군지는 불분명한데, 이처럼 일그러진 중세의 실제 모습을 밝혀 보겠다고 나선 책이 ‘중세 시대의 몸’이다. 저자는 영국의 미술사학자다. 그가 중세를 분석하기 위해 프리즘으로 쓴 건 ‘몸’이다. 머리부터 시작해 감각기관, 피부, 뼈, 심장, 피, 손, 배, 생식기 그리고 발까지 저자는 인간의 몸 이곳저곳을 각 장의 제목으로 내걸고 중세 시대를 탐색한다.
2003년 캐나다의 한 경매에서 팔린 중세 유럽 남성의 형상. 갈라진 머리, 구멍 뚫린 목 등 흉측한 모습이 중세 시대를 보는 현대인의 시각을 표현하는 듯하다.
시공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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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저자가 피부를 통해 드러내는 견해는 이렇다. 피부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몸의 내부 기관을 보호하는 1차 성벽이다. 한발 더 나아가 사람의 살갗, 동물 가죽 등으로 만든 양피지를 통해 당대의 출판문화를 이끌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정체성, 인종 같은 문제를 외부로 투영해 한 개인의 공적인 겉모습을 빚어내기도 한다. 한센병 같은 질병은 종종 피부보다 깊숙한 개인의 인성, 종교적 도덕성 등의 척도로 여겨졌고 피부색의 차이는 구별 짓기와 헐뜯기, 악마화 등의 주요 명분이 됐다.
중세 여성으로는 드물게 영국 가터 기사단의 일원이 됐던 앨리스 초서의 무덤 조형물. 화려한 석관 겉면 부조(왼쪽)와 달리 내부(오른쪽)는 부패해 가는 시신을 묘사했다.
시공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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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는 거의 항상 죽음과 연계된다. 중세 때도 그랬다. 뼈가 마지막으로 찾아가 쉬는 곳은 극히 중요한 장소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이뤄지는 영적 교감의 현장이었다. 무덤이 거래성을 띤 추모의 현장으로 변해 가면서는 망자들의 안식처를 어디에 정하고 어떻게 꾸밀지 등 일종의 공간적 역학 관계가 서서히 생겨났다. 가난한 자, 평민, 부자, 귀족 등은 매장지부터 달랐고 특별한 경우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처럼 거대한 기념물로 발전하기도 했다.
중세는 여러 면에서 현대의 각종 제도와 체계가 마련된 시기다. 중세인들은 인간의 몸을 신비하고 특별한 대상으로 보고 문학, 예술, 건축 등에 적극 활용했다. 저자는 “우리는 단순히 스스로의 비위를 맞추고 싶다는 이유로 시간상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2023-10-0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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