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행’ 주석본 펴낸 이수은
1) 18세기 문화·지명·인물 팩트체크
2) 현대인의 작품 이해·공감 도와
3) 1년간 하루 18시간씩 검색 씨름
4) 구글 지도 통해 지역 변화 살펴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700일간 여행한 이탈리아의 경험을 ‘이탈리아 기행’에 담았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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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주석으로 괴테의 이탈리아 여정과 내면의 성장, 작품세계, 18세기 풍속사에 새롭게 눈뜨게 한 이는 이수은 편집자 겸 작가다.
고전의 현대적 가치를 일깨운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등을 쓴 그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리뉴얼을 위해 이 책의 편집을 맡게 됐다. 반은 호기심으로 반은 이탈리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를 만들겠다는 호의로, 불분명한 지명·인물 정보 등이 나올 때마다 ‘팩트체크’에 나섰다. 1)
그는 ‘이탈리아 기행’을 “편지와 일기를 엮은 논픽션이고 18세기 풍속사의 귀한 자료라 배경지식 없이는 온전히 감상하기 어려울 거라 봤다”고 했다. “주석을 사족으로 여기는 독자들도 있지만 250여년 전 기록문학을 부가 지식 없이 본다면 스스로의 이해나 판단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새롭게 알아 가며 읽는다면 더 풍요로운 시선으로 음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2)
‘이탈리아 기행’ 주석본 편집을 맡아 900여개의 주석을 붙인 이수은 작가.
이수은 작가 제공
이수은 작가 제공
많게는 하루 18시간씩 도서관·박물관 홈페이지, 학회 논문, 구글 맵 등을 두루 뒤지며 검색과의 싸움에 매달렸다. “원문의 고유명사를 하나씩 점검하며 삽시간에 거대한 개미지옥으로 빨려드는 맥없는 곤충 신세가 됐다”는 말로 방대한 작업이었음을 떠올렸다. 3)
‘맥락의 이해를 위한 최소한의 해설’을 원칙으로 삼았지만 이렇게 단 주석은 200자 원고지 800~900장에 이르렀다.
괴테가 언급한 실존 인물 400여명 가운데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각양각색 인물들을 소개한 주석은 극적인 이력, 당대 사회·문화와 맞물려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다.
구글 위성 지도를 숱하게 살펴 옛 지명이 현재 어디인지 밝히며 펼쳐 놓은 지명의 유래나 변천사도 정밀하다. ‘파우스트’가 지금의 1~2부로 구상된 배경을 비롯해 알려지지 않은 대문호의 작품 등도 속속들이 안내한다. 4)
이 작가는 “현대인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괴테의 작품을 하나만 꼽으라면 이 작품”이라고 짚었다. “‘파우스트’는 웅대한 규모 속 낭만주의적 감정 폭발이, 다른 희곡들은 장광설이 많아 독자들이 읽기 어려운 반면 ‘이탈리아 기행’은 설명을 조금만 덧대면 ‘요즘 사람’ 같은 괴테와 교감할 수 있는 요소가 즐비해요. 독자들이 자신만의 이탈리아를 발견하며 이 책 내용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 짓게 된다면 기쁠 겁니다.”
2023-08-1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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