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흑역사/권성욱 지음/교유서가/576쪽/2만 9800원
전쟁사 최악의 패장 열두 명 통해
출세욕 강한 성실성의 말로 조명
‘멍부에겐 어떤 책무도 주지 마라’
현대사회서도 통할 지침에 통쾌
완장 찼다면 이참에 셀프 점검을
세계 전쟁사 속 최악의 패전은 ‘멍부(멍청한데 부지런한)’ 장군이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패망에 결정적 역할을 한 버마 주둔 제15군 사령관 무다구치 렌야(왼쪽 두 번째)는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에서 패했다.
교유서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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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이다. 사실 멍청하면서 부지런한데다가 고집까지 센 사람이 조직에 있다면 폐기처분밖에는 답이 없다고 한다.
전쟁사 연구자인 저자는 ‘멍부’가 전쟁에서 어떤 처절한 실패를 겪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은 내용을 떠나 부제와 띠지만으로도 읽을 수밖에 없다. 일단 마케팅 측면에서 성공이라 하겠다. 점잖은 제목과 달리 ‘부지런하고 멍청한 장군들이 저지른 실패의 전쟁사’라는 부제와 ‘근면하고 성실했던 장군들은 어떻게 똥별이 되었는가?’라는 띠지의 문구는 통렬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품위 있는 행동으로 연합국 지도부 전체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최악의 패배를 가져온 프랑스군 총사령관 로베르 니벨(왼쪽 세 번째)은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에서 패했다.
교유서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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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병가지상사’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열두 장군들은 승리가 보장된 수준의 전투에서 고집과 어리석음으로 뼈저린 패배를 당했다.
한국전쟁 당시 현리전투에서 제3군단장이었던 유재흥은 병사를 두고 전장을 떠나면서 수많은 한국군이 중국군 포로가 됐다.
교유서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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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례들도 마찬가지이다. 멍부는 조직과 국가를 망치는 해충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총사령관이었던 쿠르트 폰 하머슈타인 에쿠오르트 장군이 쓴 ‘부대 지휘 교본’을 인용하며 ‘멍부’들에 대한 관리법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반드시 주의해야 할 사람은 멍청하면서 부지런함을 갖춘 자다. 그는 무엇을 하건 간에 조직에 해를 끼칠 뿐이므로 어떤 책무도 맡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실제 조직 속 ‘멍부’들은 승승장구하고 어쩌다 찬 완장을 자기 능력으로 착각하고 권리만 주장할 뿐 책임은 외면한다. 자, 이제 가슴에 손을 얹고 본인이 ‘멍부’가 아닌지 생각해보자. ‘나는 멍부가 아니야’라는 생각을 떠올리는 당신, 어쩌면 좀먹는 ‘멍부’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2023-06-0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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