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데이비드 색스 지음/문희경 옮김/어크로스/400쪽/1만 8800원
챗GPT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란 환상에 젖어 인간과 세상에 관해 놓치고 있는 질문들이다. 팬데믹은 미래의 일로만 여겨지던 디지털 세상이 삶의 모든 측면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보여 준 실험이었다. 그 3년은 디지털만 남은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앞당겨 보여 준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아날로그의 반격’ 이후 6년 만에 저자는 회사, 학교, 쇼핑, 도시생활, 문화생활, 대화, 휴식 등 일곱 주제로 팬데믹 기간을 돌아본다. 200여명을 만나 생생한 체험담을 들었다.
포드자동차 설계팀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몇 달 동안 진전을 보지 못하던 디자인을 벽에 핀을 꽂아 설명해 가며 3시간 만에 해결했다. 캐나다 오타와대에서 민주주의와 교육을 가르치는 조엘 웨스트하이머는 “학교는 복도이고 쉬는 시간의 소통이다. 학교의 이런 측면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봉쇄 초기, 시간의 의미를 잃었지만 달력이 중요해지는 것을 깨달았다고 돌아본다. 책의 일곱 장을 요일로 꾸민 이유이기도 하다.
달력의 하루하루를 지워 나가며 전에 경험한 아날로그 삶과 지금 헤쳐 나가는 디지털 삶의 대비가 도드라졌다고 했다. 저자는 두 가지를 확신하는데, 디지털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며 아날로그 세상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세계로 중심부에 있을 것이라고 한다. 어떤 미래도 2진법으로 다가오지 않으며 정서와 인간관계, 현실의 공동체, 우정과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5장 ‘금요일’의 소제목은 ‘혼자 웃거나 사랑하는 일은 드물다’. 에필로그의 한 구절이다. ‘내가 살고 싶은 미래는 나의 인간적인 욕구와 갈망과 경험을 최우선에 두는 세상이다.’
2023-05-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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