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크리스티… 작가판 사랑과 전쟁

위고·크리스티… 작가판 사랑과 전쟁

이슬기 기자
입력 2019-08-08 17:26
수정 2019-08-0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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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랑의 서/섀넌 매케나 슈미트·조니 렌던 지음/허형은 옮김/문학동네/416쪽/1만 5800원

#1. 1926년 12월 한 유명 추리소설가가 자신의 소설 속 미스터리한 사건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영국 전역이 난리가 난 가운데, 알고 보니 그녀는 한 고급 호텔에 머물며 태연자약하게 쇼핑과 스파를 즐기고 있었다. 호텔 직원의 제보로 발견된 그녀는 실종 기간 남편의 내연녀 이름으로 호텔에 투숙했다.

#2. 한 대문호에게 50년 동안 2만여통의 연서를 보낸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그녀가 쓴 구절을 그가 고대로 베껴 다른 연애 상대에게 보냈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

1번의 주인공은 애거사 크리스티, 2번은 빅토르 위고다. 이 미친 ‘작가판 사랑과 전쟁’은 놀랍게도 모두 실화다. 책 ‘미친 사랑의 서’는 각각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 ‘더 라이터’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해 온 저널리스트 섀넌 매케나 슈미트와 조니 렌던의 집요한 취재 결과물이다. 출전과 참고문헌만 38쪽에 달하는데,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꼼꼼하게 고증했다는 얘기다.

작가들의 러브 스토리에서 삼각관계, 사각관계, 불륜은 애교 수준이다. 55세 차이가 나는 연상연하 커플(아서 밀러), 이중 결혼(아나이스 닌), 부인의 등에 실제로 칼을 꽂은 남편(노먼 메일러), 근친상간(바이런·아나이스 닌) 등이 속출한다. “결과가 어찌 되건 일단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은 그만한 가치가 있지”라고 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사연에는 ‘남자가 한을 품으면’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헤밍웨이는 몇 년을 주기로 배우자 교체를 밥 먹듯이 하다가 마침내 자신보다 더 활화산 같은 열정을 가진 저널리스트를 만나 그녀를 집에 눌러앉히려 갖은 술수를 부린다.

책은 어설픈 연애 지상주의나 정신 이상 예술가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책의 미덕은 이들의 ‘미친 사랑’이 작품에 어떻게 투영됐는가를 보여 주는 데 있다. 첫날 밤 탈장 증상이 온 신랑과 생리가 터진 신부의 ‘황무지’ 같은 결혼 생활은 T S 엘리엇의 대표작 ‘황무지’가 됐다. 책을 책임편집한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은 “책 덮고 나면 언급된 문호들의 작품을 찾아보고 싶어진다”며 “치정으로 범벅이 된 연애사, 난투극에 가까운 결혼 생활 후 작가들은 그 지질한 일상에서 스스로를 건져 내 작품으로 승화시켰다”고 했다.

대문호의 사랑에서 모종의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또는 작품으로 옛 연인에게 복수한 치졸한 그들을 맘껏 욕해도 좋을 것이다. 김훈 작가는 이 책더러 ‘40금(禁)’이라고 했단다. 지독하다, 이 책.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19-08-09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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