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언니’ 제작진이 밝히는 ‘예능의 기술’
출연진에 작가·PD 등 여성 제작진 ‘다수’엄마·주부 역할보다 있는 그대로 매력 담아
민감한 주제는 출연진과 미리 상의하기도
“언니들의 선수 생활처럼 롱런하고 싶어”
방현영CP, 박지은PD, 장윤희 작가 등 ‘노는 언니’의 주요 제작진들이 촬영 현장에서 함께 한 모습. 티캐스트 E채널 제공
국가대표 출신들이 모인 캠핑카에서 ‘그 날’에 대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사석에서도 말하기 어려웠던 ‘그 날’의 이야기는 골프, 펜싱, 배구, 수영 등 종목별 생리 대응법으로 이어졌다. 운동만 한 언니들이 한바탕 놀아본다는 E채널 예능 ‘노는 언니’에서 최근 화제가 된 장면이다.
이 주제는 어떻게 나왔을까. 최근 서울 마포구 E채널 제작센터에서 만난 방현영 책임PD(CP) 등 제작진은 “대본이나 설정은 전혀 없었다. 언니들의 있는 그대를 자연스럽게 담으면 재밌는 장면들이 나온다”고 에둘러 설명했다.
최근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넷플릭스에 서비스된 후 ‘노는 언니’는 ‘오늘의 한국 톱10 콘텐츠’에 꾸준히 이름을 올린다. 박세리 등 여성 선수만 모은 ‘모험’으로 고무적인 결과를 얻은 제작진도 여성 비율이 높다. 방 CP와 박지은 PD, 장윤희 작가 등 기획 회의에 참여하는 스태프 10여명이 모두 여성이다. 편집, 자막, 그래픽 등을 포함하면 절반에 육박한다. 예능계에서 보기 드문 성비다.
“맏언니 박세리 감독은 정말 쿨하고 절대 빼는 게 없어요. 남현희, 한유미, 곽민정, 정유인 등 선수들도 아이디어도 적극적으로 내고 늘 열심이고요. ” 제작진들은 언니들의 매력이 너무 많다며 애정을 쏟아냈다. E채널 제공
신기하다는 시선은 오히려 외부에서 느낀다. 섭외 등의 과정에서 만나는 관계자들은 “여긴 다 여성분들이냐”는 질문을 빈번하게 건넨다. 방 CP는 “아직 여성 총괄이 드물다 보니 나를 신뢰하도록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계속 헤쳐 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분명한 강점도 있다. 대화 속 공감 포인트를 섬세하게 짚어 새로운 이야기와 재미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국가대표의 결혼, 출산 이야기나 생리 고충이 대표적이다. 출연자가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미리 조율해 배려하기도 한다. 전문 방송인이 아니라서 더 필요하다. 남현희 선수의 과거 성형 논란에 대한 방송 내용에 대해서도 미리 대화를 나눴다. 장윤희 작가는 “자연스럽게 나온 대화라도 방송에 나갈 때 비하나 상처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사전에 상의하는 편”이라고 했다.
‘노는 언니’ 야외 촬영에 몰두하고 있는 스태프와 출연진들. E채널 제공
촬영 역시 출연진의 캐릭터 자체에 집중해 ‘화장’이 필요 없다. 이미경 촬영감독은 “운동 위주의 내용이면 근육 등 신체를 보여 주지만 평소에는 대화나 표정에 초점이 간다”며 “여성 선수를 찍는다는 관점이 아니라 아이템에 맞춰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프로그램 뿐 아니라 제작 인력 면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여성 CP와 남성 막내 작가들이 최근 속속 나오며 기존 구도가 깨지는 추세다. 박 PD는 “콘텐츠의 재미로 평가받았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며 “언니들의 선수생활처럼 지구력을 갖고 10년쯤 롱런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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