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Bea’에서 8년간 원인 모를 무기력증으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던 비(오른쪽)가 자유로워지기로 결심한 뒤 간병인 레이(가운데)와 비의 엄마 캐서린(왼쪽)이 요란한 파티를 벌이고 있다.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주어진 삶은 고통스럽고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처지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류는 오랫동안 죽음을 인간의 손에 의해 이뤄져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간주해왔지만 최근 들어 이와는 다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죽음을 선택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사회가 분명히 다뤄야 할 의제이기도 하다.
‘비bea’는 연극으로서 안락사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삶에 그다지 희망이 없는 비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비와 같은 불치병 환자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비를 지켜봐야 하는 가족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한 번쯤 고민하게 한다.
비에게 어느 날 공감 능력이 탁월한 간병인 레이가 등장한다. 레이에게 연애도 임신도 불가능한 고충을 털어놓던 비는 레이에게 부탁해 엄마에게 줄 편지를 대신 써달라더니 깜짝 놀랄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에게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며 안락사를 부탁한 것. 그러나 엄마는 살인은 불법이라며 비가 했던 것처럼 레이에게 편지를 쓰게 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거절한다.
비(왼쪽)의 엄마 캐서린(오른쪽)은 안락사를 청하는 딸의 부탁을 거절했다가 진솔한 소통을 통해 서서히 마음을 이해해간다.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죽고 싶으면서도 남들이 느끼는 욕망과 감정에 솔직해져 보고 싶은 비의 대사와 행동들은 살아있음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죽어서는 안 된다는 세상의 규범이 자유의지를 지닌 영혼을 속박할 수 있는지, 인생의 나머지가 죽음뿐이라면 죽을 권리를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지 등을 생각하게 한다.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한 공감이라는 낯선 현상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사회가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연극적으로 신선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공연 막바지 감옥 담장처럼 비의 방을 감싸던 벽이 열리고 사과나무가 선 정원이 나타나는 무대도 인상적이다. 비가 갇혀있던 굴레에서 벗어나 진짜 자유를 얻는 것 같기도, 죽음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엄격한 장벽이 허물어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레이(왼쪽)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비의 속마음에 진정으로 공감하면서 비의 삶을 기존과 다르게 바꿔놓는다.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24일까지. 비는 이지혜·김주연, 레이는 강기둥·김세환, 엄마 캐서린은 방은진·강명주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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