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페인’
영화 ‘리얼 페인’
공항으로 향하는 한 남자가 계속해서 전화를 건다. 출발하면서, 택시를 타면서, 거의 도착할 무렵까지 전화하지만 상대방은 도통 답이 없다. 도착한 뒤 초조해하고 있을 때 갑자기 상대방이 달려와 안으며 놀라게 한다. 몇 시간 일찍 왔다고 밝힌 그는 “공항엔 이상한 사람이 많아서 먼저 와서 구경하고 있었다”고 태연하게 말한다.
15일 개봉하는 영화 ‘리얼 페인’은 성격, 취향, 삶의 태도까지 완전히 다른 사촌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와 벤지(키런 컬킨)의 여정기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기리고자 오랜만에 재회한 둘은 폴란드 홀로코스트(대학살) 가이드 투어에 참여한다.
내성적이고 이성적인 데이비드와 유쾌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벤지의 여행이 순탄할 리 만무하다. 벤지는 독일군에 맞서 싸운 민중의 동상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잡아 보자며 일행들을 유쾌하게 만들다가도, 강제수용소행 열차에 몸을 실었던 선조들을 생각하면 기차 일등석에 탈 수 없다며 화를 내고 마음대로 자리를 옮긴다. 제멋대로인 벤지 탓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데이비드의 걱정도 커져만 간다.
관객은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데이비드가 답답하게 다가오고, 선을 넘는 벤지의 돌출 행동에 불쾌감을 느낄 법하다. 그러나 영화는 나치의 만행이 아로새겨진 폴란드 곳곳을 담담하게 보여 주며 엉뚱한 방향으로 튀지 않게 적절하게 누른다. 폴란드의 세계적인 작곡가 쇼팽의 피아노곡이 영화를 아름답게 채운다. 어렸을 적 형제처럼 친밀했지만 각자의 삶을 사느라 멀어진 둘의 사이는 결국 폭발해 버린 데이비드가 벤지의 아픈 과거를 사람들 앞에서 들추고,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밝힌 후 반전을 맞는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인간의 내면은 복잡하고, 한 걸음 다가서야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는 감독이자 데이비드를 연기한 아이젠버그의 가족사를 토대로 만들었다. 묵직한 과거사에 둘의 여정을 입혀 낸 연출이 탁월하다. 특히 영화 말미에 나오는 홀로코스트 유적지 마이다네크 수용소가 방점을 찍는다. 아이젠버그는 “무엇이 진짜 고통, 타당한 고통인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컬킨은 이번 영화로 올해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아이젠버그는 주연상 수상에 실패했지만 컬킨과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연기를 보여 준다. 90분. 15세 이상 관람가.
2025-01-13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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