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거장’ 정상화 화백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전시된 흑색과 백색 단색화 작품 앞에 선 정상화 화백. 한 가지 색처럼 보이지만 작품 안에 각각 다양한 흑색과 흰색이 겹쳐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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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노화가의 눈빛은 형형했고, 어조는 단호했다. 독창적인 격자 구조 화면으로 한국 단색조 추상의 한 획을 그은 정상화 화백은 남들이 넘보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 대가임에도 여전히 새로운 예술에 목말라했다. “작품 속에 나의 핏줄이 있고, 심장 박동이 있다”는 그의 말은 지치지 않는 열정과 끊임없는 수행으로 한평생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예술가만이 가질 수 있는 값진 자부심일 것이다.
정상화, 무제 95-9-10, 1995, 캔버스에 아크릴릭, 228×18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정상화 화백. 사진 이만홍
작품 65-B, 1965, 캔버스에 유채, 162×130.3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무제 74-F6-B, 1974, 캔버스에 유채, 226×181.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정 화백은 “화가들이 붓으로 그렸다가 지우고 다시 그리는 것처럼 나는 드러내고, 메우고, 다시 드러내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며 “화면에 설득력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을 때 작업을 멈춘다”고 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반년에서 1년이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지만 조수를 한 번도 두지 않고, 혼자서 작업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뜯어내고, 메우는 반복적인 행위를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수행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평면이되 ‘입체적인 평면’이고, 단색이지만 ‘다색의 단색’이다. 그는 “백색 단색화라도 그 안에는 수많은 흰색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선 종이와 프로타주(탁본 기법) 등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미발표 작품들도 소개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2021-05-2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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