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열 화백 개인전 ‘은유의 섬’
낙서 같은 화면에 담은 인물과 자연
오세열 ‘무제’(2021) 학고재갤러리 제공
오세열 화백은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을 캔버스에 펼쳐 온 예술가다.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나 올해 76세가 됐지만 여전히 동심을 품고 있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은유의 섬’에선 아이의 마음과 노인의 마음이 공존하는 노화가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회화 24점을 만날 수 있다.
붓으로 숫자를 쓰고, 기호를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 단색화 같은 바탕을 만든 뒤 못이나 면도날 같은 뾰족한 도구로 긁어내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는 “붓으로 물감을 찍어 그리면 바탕 색과 뒤엉켜 색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면서 “배경과 선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효과를 위해 택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의 주요 소재인 숫자에 대해선 “특별한 의미가 없다”면서도 “우리는 살면서 늘 숫자에 파묻혀 있지 않나. 떨쳐 내고 싶어도 떨쳐 낼 수 없기에 계속 반복해서 적는다”고 했다.
오세열 ‘무제’(2018) 학고재갤러리 제공
오세열 화백. 학고재갤러리 제공
전쟁의 폐허와 상흔 한가운데서 보낸 유년기의 기억은 작가의 예술적 원천이다. “어린 시절 하루 중 그림 그리는 시간이 제일 소중했다”는 그는 급격한 산업화의 폐해와 물질주의 세태에 실망해 점점 더 내면의 순수함을 탐색하는 작업에 매진했다. 그가 그린 인물들이 하나같이 평범한 외양이 아닌 것도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 마음이 어두운 아이들을 봐 왔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담은 인물 그림들은 각박한 현실을 사는 요즘 세대에게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전한다.
오세열 ‘무제’(2019) 학고재갤러리 제공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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