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작가 ‘유령 패션’展의 메시지
몸 빠져나가 옷만 춤추는 듯한 이미지“옷, 계급 상징… 우리 존재 가치 묻는 것”
68세에 스마트폰만으로 디지털 펜화
“나이 훨씬 많은 호크니도 태블릿 써요”
인터넷에서 찾은 패션 사진을 바탕으로 스마트폰의 그림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완성한 안창홍 작가의 디지털 펜화 ‘유령 패션’ 작품들. 모델보다 옷이 더 돋보여야 하는 패션 산업의 속성을 꼬집는 동시에 자본주의 욕망의 허상을 은유한다.
호리아트스페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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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만난 안 작가는 옅은 보라색으로 머리칼을 물들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나이 올해 68세. “원래 백발인데 전시에 맞춰 염색했다”며 웃었다. ‘유령 패션’이란 제목처럼 전시 작품은 감각적인 패션 사진에서 모델이 사라지고 화려한 옷과 신발만 남은 이미지들이다. 작업 도구는 스마트폰 딱 하나. 인터넷에서 작품의 밑바탕이 될 패션 사진 자료를 수집한 뒤 스마트폰의 그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형상을 지우고 덧붙이는 과정을 반복해 디지털 펜화를 완성한다.
인터넷에서 찾은 패션 사진을 바탕으로 스마트폰의 그림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완성한 안창홍 작가의 디지털 펜화 ‘유령 패션’ 작품들. 모델보다 옷이 더 돋보여야 하는 패션 산업의 속성을 꼬집는 동시에 자본주의 욕망의 허상을 은유한다.
호리아트스페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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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을 주제로 삼은 이유에 대해 그는 “패션은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이면서 자본주의와 계급의 상징이다. 풍요의 시대 화려한 거리의 의상들에서 허깨비 같은 환상을 본다”며 “몸이 빠져나가 옷만 춤을 추는 듯한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 존재의 가치에 대한 화두를 던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령 패션’ 작업이 처음은 아니다. 1979년 유화와 콜라주로 작업한 ‘인간 이후’에 똑같은 이미지가 등장한다. 작가는 “그때는 소극적으로 그렸고, 40년이 흐른 지금은 전면에 부각했다는 점이 다를 뿐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 의식은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안창홍 작가.
호리아트스페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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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첫 개인전으로 화단에 데뷔한 안 작가는 19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에 참여하는 등 1세대 민중미술가로 활동했다. ‘가족사진’ 연작, ‘베드 카우치’ 연작 등으로 주목받았고, 이중섭미술상(2013), 이인성 미술상(2009) 등을 수상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2021-02-11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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