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 같았다”… 생지옥이 된 ‘중동의 파리’

“히로시마 원폭 같았다”… 생지옥이 된 ‘중동의 파리’

안석 기자
안석 기자
입력 2020-08-05 22:04
수정 2020-08-06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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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4100여명 사상

검은 연기 이웃나라 시리아까지 퍼져
240㎞ 떨어진 지역서도 폭발음 들려
前 CIA요원 “군사용 폭발물 터진 듯”
시민·軍 실종자들 찾아 밤새 구조작업
프랑스·카타르 등 각국서 의료진 파견
4일 저녁(현지시간) 초대형 폭발 참사가 발생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처참히 무너진 건물 잔해 위로 검은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헬기가 물을 뿌리며 화재진압을 하고 있다. 5일 오후 현재 사망자는 100명, 부상자는 4000명을 넘어섰다고 레바논 적신월사가 발표했다. 베이루트 AFP 연합뉴스
4일 저녁(현지시간) 초대형 폭발 참사가 발생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처참히 무너진 건물 잔해 위로 검은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헬기가 물을 뿌리며 화재진압을 하고 있다. 5일 오후 현재 사망자는 100명, 부상자는 4000명을 넘어섰다고 레바논 적신월사가 발표했다.
베이루트 AFP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오후 6시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폭발음과 함께 지축을 흔드는 강한 진동이 발생했다. 일부 시민은 지진이 났다고 생각해 반사적으로 바닥에 웅크린 뒤 다음 진동을 기다리던 찰나 훨씬 더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주변 건물들이 순식간에 붕괴됐다. 쾌적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로 한때 ‘중동의 파리’로 불렸던 베이루트가 생지옥으로 급변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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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폭발은 레바논에서 약 240㎞ 떨어진 키프로스에서도 폭발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력했다. 폭발 현장에서 7.3㎞ 떨어진 주레바논 한국대사관의 건물 유리 2장이 파손됐다. 도시 상공에는 원자폭탄이 터진 것을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버섯구름이 형성됐고, 인접한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번진 검은 연기는 사고 다음날 오전까지도 잡히지 않았다. 한 목격자는 BBC에 “거대한 폭발음에 몇 초간 청력을 잃을 정도였다. 주변의 건물과 자동차, 상점이 모두 파괴됐다”고 전했다. 베이루트 시장은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서 일어난 폭발 같았다.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참담함을 전했다.

당국은 추가 피해를 우려해 이 지역 일대를 봉쇄하고 밤새 수색과 구조작업을 진행했지만 재앙급 참사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시 전체가 붕괴된 거나 마찬가지여서 구조 작업도 위험한 상황이다. 시민과 군이 100명 이상인 실종자를 찾아 밤새 건물 잔해를 치우면서 구조작업을 벌였다. 생존자 발견 소식에 들것과 산소통이 화급하게 운반되는 모습이 목격됐다. 또 군과 경찰이 붕괴 위험이 있는 건물에 대한 접근을 차단한 가운데 폭발에 실종된 가족을 찾겠다고 건물에 들어가려는 이들도 있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확인된 사망자는 100명 이상으로 늘어났고, 부상자는 4000명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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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초대형 폭발 사고로 다친 시민들이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머리에 붕대를 감싼 여자 아이에게서 폭발 당시의 처참한 모습이 엿보인다.  베이루트 AFP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초대형 폭발 사고로 다친 시민들이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머리에 붕대를 감싼 여자 아이에게서 폭발 당시의 처참한 모습이 엿보인다.
베이루트 AFP 연합뉴스
코로나19로 고군분투 중이던 베이루트 시내 병원엔 밤새 부상자가 몰려들어 아비규환의 상황을 연출했다. 사방이 피투성이가 된 현장에서 이송된 부상자들로 응급실이 가득 찼고, 의료진은 복도나 주차장에서까지 환자들을 치료해야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실종자를 찾고, 헌혈을 요청하는 메시지가 쇄도했다. 국영라디오는 실종자·부상자 명단을 밤새 불렀다.

레바논 정부는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 장기간 적재된 인화성 물질 질산암모늄을 참사 원인으로 지목하며 관리 소홀에 따른 ‘인재’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무함마드 파미 내무장관은 예비 조사를 근거로 “2014년 화물선에서 압수해 부두 창고에 보관 중이던 2750t 상당의 질산암모늄이 폭발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레바논에서 수년간 활동한 로버트 베어 전 미중앙정보국(CIA) 요원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폭발 후 발생한 주황색 화염구는 분명 군사용 폭발물”이라며 항구에 무기 은닉처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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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4일(현지시간) 대형 폭발로 형성된 형성된 하얀 먼지구름 같은 충격파가 도시 주변 일대를 덮치는 모습을 찍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동영상 캡처 사진. 베이루트 로이터 연합뉴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4일(현지시간) 대형 폭발로 형성된 형성된 하얀 먼지구름 같은 충격파가 도시 주변 일대를 덮치는 모습을 찍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동영상 캡처 사진.
베이루트 로이터 연합뉴스
레바논에서 폭발 공격 테러가 최근 15년간 13건이나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 역시 외부 세력의 소행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폭탄 공격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어 전 요원은 “이번 폭발은 거의 사고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대형 참사로 국가부채와 높은 실업률 등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레바논의 위기는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레바논에서는 이미 경제위기에 따른 민심 이반으로 수개월째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AP는 레바논에 수입된 곡물 85%가 저장돼 있던 사일로(곡식 저장소)가 이번 폭발로 파괴됐다며 곡물 대부분을 수입하는 레바논이 식량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국제사회는 애도를 표하며 긴급구호에 나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5일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을 파견한 데 이어 레바논을 방문한다고 엘리제궁이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레바논 지원을 승인했고, 이웃 카타르와 쿠웨이트, 요르단 등도 응급의료진 지원을 약속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2020-08-0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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