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육성한 무궁화 품종들. 1, 선녀 2, 고주용 3, 화합 4, 하공 5, 아사달 6, 배달.
6월 꽃봉오리와 꽃이 진 뒤 11월의 열매와 종자.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국화이지만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은 아니다. 중국 원산의 식물이다. 물론 수백년 전 중국에서 건너와 우리나라에 심어지기 시작했지만, 그조차도 일제시대에 거의 모두 베어져 버렸다. 그렇게 우리나라에 오게 된 무궁화는 오래 꽃을 피우는 특성이 우리나라 사람의 끈기와 닮았고, 흰 꽃이 백의민족을 상징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나라 국화가 되었다.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그래서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은 국화인 무궁화의 보급을 위해 그들의 효용성을 연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잘 생육하거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색과 형태를 띠는 무궁화를 육성해 왔다. 그렇게 육성된 무궁화만 200여종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로수나 공공기관 혹은 공원, 도시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는 이 무궁화가 그만큼 다양하게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늘 새로운 것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가장 사랑받는 식물은 늘 우리가 기존에 보지 못했던, 특이하고 신기한 형태의 외국 식물이다. 그에 비해 무궁화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뻔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수목원의 무궁화 정원에서 보았던 그 꽃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궁화의 형태와 성질을 넘어서는 것들이었다. ‘선녀’는 꽃이 새하얗지만 꽃잎이 빛을 따라 은은한 연보랏빛을 띠고, 아사달은 분홍색 물감을 묻힌 붓이 스친 듯 꽃잎 부분 부분에 분홍색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다양하고 아름다운 형태였다.
늘 생각했다. 이런 무궁화의 존재를 누군가 그림으로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이 기록은 기록의 의미를 넘어 사람들에게 무궁화의 다양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매개가 되어 줄 것이다. 네덜란드는 튤립 버블이라 불리는 황금시대가 지나고 경제가 붕괴되면서 튤립 문화는 잠식될 뻔했다. 그러나 곧 국내가 아닌 주변 국가에 눈을 돌려 세계에 튤립을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튤립 문화는 살아난다.
네덜란드가 외국에 튤립을 수출하고자 했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식물세밀화가들을 모아 네덜란드에서 육성하고 재배한 튤립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기록된 튤립 세밀화로 인쇄물을 만들어 주변 국가에 네덜란드 튤립을 홍보하고 수출하여 지금까지 튤립 문화가 지속될 수 있었다. 여전히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튤립 세밀화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그때의 그 그림은 현재 중요한 튤립 연구 데이터로 이용된다.
언젠가 일본 진다이식물원의 무궁화 정원에 간 적이 있다. 정원 입구에 무궁화에 대한 설명이 쓰인 표지판이 있었는데, 그 표지판엔 무궁화 연구를 이토록 많이 하는 우리나라는 쏙 빠진 채 일본과 중국 이야기만 쓰여 있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나라 무궁화를 그리고자 하는 마음은 더해진다.
어제는 무궁화를 그리려 수목원의 무궁화 정원을 다녀왔다. 조생종인 몇몇은 이미 만개했고 대부분은 봉오리를 맺은 채 꽃이 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올해는 두어 종의 무궁화를 그릴 생각이다. 이렇게 매년 꾸준히 조금씩 그리다 보면 언젠가 우리나라의 무궁화 컬렉션을 완성할 날이 오지 않을까.
2018-07-1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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