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살아 있는 돌, 리톱스를 아시나요?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살아 있는 돌, 리톱스를 아시나요?

입력 2018-02-28 22:08
수정 2018-02-2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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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스케치북에 식물을 그려 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긴 원통형의 기둥에 잎이 울창한 나무를 그리거나 줄기에 꽃이 달린 풀을 그렸던 기억이 있다. 누구에게든 ‘식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고, 그 이미지는 대개 비슷한 형태일 것이다. 긴 줄기와 그 아래에 난 잔뿌리, 그리고 줄기의 곁가지에 난 풍성한 잎들. 거기에 화려한 꽃과 열매 달린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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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리톱스. 왼쪽 위부터 루비(2), 자보취옥(3), 대진회(4), 백화황자훈(5), 보류옥(6), 올리브옥(7), 다브네리(8), 황미문옥(1), 여홍옥(9), 노림옥(10), 장인옥(11) 리톱스. 이들이 다른 식물과 달리 뿌리와 잎만을 가지게 된 건 척박한 땅에서 생체활동을 최소화해 수분의 손실을 막고자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리톱스. 왼쪽 위부터 루비(2), 자보취옥(3), 대진회(4), 백화황자훈(5), 보류옥(6), 올리브옥(7), 다브네리(8), 황미문옥(1), 여홍옥(9), 노림옥(10), 장인옥(11) 리톱스. 이들이 다른 식물과 달리 뿌리와 잎만을 가지게 된 건 척박한 땅에서 생체활동을 최소화해 수분의 손실을 막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물을 관찰하고 그들을 그림으로 기록하면서, 내가 생각해 온 식물의 형태란 얼마나 단편적인 이미지였는지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집에서 키우는 선인장은 줄기 없이 아주 두꺼운 잎을 기둥 형상으로 하고, 박쥐란은 식물보다는 어느 조류의 날개와 같은 모양이다. 네펜데스의 잎은 평면이 아닌 항아리와 같고, 틸란드시아는 동물의 수염과 같다. 모두 우리가 생각해 온 전형적인 식물의 모습은 아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리톱스(Lithops)는 우리가 생각하는 식물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버리는 형태의 식물이다.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리톱스는 작은 돌이 땅에 붙어 있는 것처럼 생겼다. 우리 눈에 낯설어 보이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재배지에서 수입돼 판매되고 있고, 리톱스만을 키우는 ‘리톱스 마니아’들이 있을 만큼 나름대로 특수한 식물 문화를 구축해 가고 있는 식물이다. 리톱스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씨앗을 발아시키고 다양한 컬렉션을 만드는 것에 열중한다. 물론 틸란드시아나 선인장과 식물들처럼 공기 정화나 음이온을 방출하는 유익한 기능은 아직 연구된 바 없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이 작은 식물과 또 이들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주목해야 할지 모르겠다. 식물에 어떤 기능을 기대해서라기보단 단순히 ‘리톱스가 좋아서’ 재배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리톱스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리톱스의 ‘형태’ 그 자체에 있다. 리톱스에는 다른 식물에 있는 줄기도 없고, 잎은 동그란 기둥 모양이다. 땅에 작은 자갈이 박혀 있는 것처럼 보여 누가 봐도 살아 있는 생물이라 추측하기 힘든 형태다. 그리고 모든 식물이 그렇듯, 리톱스가 돌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된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이들의 고향은 남아프리카의 사막이고, 이 사막에는 긴 원뿔에 가시가 많은 선인장과 두꺼운 잎을 가진 다육식물이 산다. 리톱스도 이들 다육식물에 속한다. 척박한 사막에는 물도 없고 햇빛도 강해 살아 있는 생물도 한정적이고, 사막의 모든 생물이 거대한 동물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리톱스는 동물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돌처럼 위장했다. 이들이 살아 있는 돌이 된 건 동물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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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톱스는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 자생하기 때문에 잎 안에 물을 저장해 두고 살아간다.
리톱스는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 자생하기 때문에 잎 안에 물을 저장해 두고 살아간다.
덕분에 리톱스를 연구하는 외국의 연구자들도 이들을 채집하고 조사할 때 이들을 찾아내는 게 여간 어렵지 않은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어쨌든 우리 인간도 동물이니, 동물을 피하기 위한 이들의 위장은 가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다.

리톱스를 돌로 보이게 하는 부위는 이들의 잎인데, 다른 식물들과는 다른 이 두꺼운 잎은 사막의 건조한 기후를 위해 진화해 왔다. 사막에는 비가 잘 내리지 않아 늘 물이 부족하다. 식물이 살아가는 데에 가장 필요한 건 수분이고, 리톱스가 사는 곳의 연평균 강수량은 불과 50㎜에 불과하다. 그래서 리톱스는 주변에 보이는 수분을 모두 모을 필요가 있고, 비가 내리거나 수증기나 안개가 쌓이면 잎 안에 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쓸 수 있도록 두꺼운 잎이 발달한 형태로 진화되었다. 잎의 표면은 새벽이슬이 잘 맺히는 질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잎은 긴 줄기로부터 나지 않고 뿌리에서 곧바로 난다.

이들이 단순해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식물이 가지고 있는 뿌리, 줄기 혹은 가지, 잎 등의 기관 없이 뿌리와 잎만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인데, 이건 수분의 손실을 막고자 생체활동을 최소화한 것이다. 뿌리, 줄기 혹은 가지, 잎 등 모든 기관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그만큼 물과 에너지가 필요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관만이 발달해 온 것이다. 이들에게 줄기와 가지의 존재는 사치일 뿐이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리톱스의 돌과 같은 형태는 척박한 사막에서 작디작은 식물이 살아남아 온 긴 역사를 그대로 보여 준다. 농장에서 수입해 가져온 리톱스를 그림으로 그리면서 생각한다. 식물의 형태를 단정 짓지 말아야지. 모든 식물이 똑같이 뿌리와 줄기와 잎, 꽃, 열매를 가질 필요는 없다. 넓은 대지, 다양한 기후대만큼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식물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들을 다 알지 못한다.
2018-03-0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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