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따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학창 시절 밤새워 ‘덕질’을 하다 늦잠을 자게 되어 피곤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물론 이것은 ‘덕질’의 단점이라고 볼 수 있으나 반대로 영상을 보면 한국어 듣기 연습도 되고 한국어 어휘를 자발적으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덕분에 한국어 듣기 실력이 좋아졌고 한국어 말하기 실력도 늘어날 수 있었다.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 좋아하는 연예인이 출연한 예능을 한없이 챙겨 봄으로써 꿩 먹고 알 먹듯이 나름의 재미를 얻으면서 한국어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덕질’은 여전히 내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한국어 실력이 많이 서툴고 부족하기 때문에 ‘덕질’을 하면서 실력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덕질’을 하면서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도 동시에 접하게 되고 배우게 되었다. 드라마나 예능을 보면 단지 배우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거기에 담겨진 가치와 문화 양상도 같이 알게 되었다. 더구나 한국인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이는 한국 생활을 하면서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슬기로운 ‘덕질’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맞다고 본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는 물론이고 지금 ‘덕질’을 하면서 좋은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가령 좋아하는 배우가 저서를 출간했을 때 그 책을 완독했고 언어 실력을 동시에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 배우가 좋아하는 책을 추천하면 그 책을 읽게 되었고 거기에 들어 있는 정보를 얻고 지식을 넓힐 수 있었다. 혹은 어떤 배우가 자연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될 때, “아, 나도 해 봐야겠다”고 생각해 등산도 하고 자연과 관련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덕질’ 덕분에 원래 독서를 좋아하는 나도 더 많은 책을 읽게 되었고 평소에 운동을 싫어했으나 등산이나 산책을 함으로써 더욱 건강한 삶을 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게다가 ‘덕질’을 할 때는 혼자서 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예전에 고국에서 수업하면서 학생들과 어떤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다. 문학 수업을 했을 때 어떤 영화를 같이 보았는데 거기에 출연한 배우가 내가 좋아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학생들과 그 영화의 후기와 배우에게 줄 편지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 왔을 때 그 편지를 스크랩북에 붙여 아는 분을 통해 그 배우에게 전달했다. 그 배우가 편지를 직접 읽었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전달했을 때 학생들 또한 매우 기뻐했다. 그때는 나의 사심을 담아 수업을 했으나 학생들의 쓰기 실력이 발전해 일석이조였다. 그래서 나와 타인에게 ‘덕질’이 이렇게 좋은 일이란 걸 깨달았다. 자신에게 보람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슬기로운 덕질’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지금 한류 전파로 인해 ‘덕질’하는 전 세계에 있는 팬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즐거움을 느끼면서 좋은 영향을 얻을 수 있는 ‘덕질’의 힘이라는 말이다.
2021-03-2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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