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나폴리 바바의 정확한 명칭은 ‘바바 나폴레타노 알 럼’이다. 나폴리식이란 이름이 붙은 데서 추측할 수 있듯 바바는 원래 나폴리 음식이 아니었다. ‘바바 오 럼’이라는 프랑스 디저트의 나폴리 버전이다. 어째서 프랑스의 디저트가 나폴리까지 건너가게 됐는가에 대한 연유를 따지다 보면 18세기 격동의 유럽 정치 속 폴란드까지 당도하게 된다. 이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바바와 함께하는 모험에 빠져 보자.
이탈리아 나폴리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저트 바바는 격동의 유럽 역사 속에서 폴란드와 프랑스 등 국경을 넘나들다 나폴리까지 흘러와 정착했다. 럼에 적셔 만드는 게 원형(사진)인데 때로는 럼 대신 레몬으로 만든 술의 일종인 리몬첼로를 이용하거나 토핑으로 여러 가지 재료를 올려 다양하게 변주한다.
일설에 따르면 알자스와 마주하고 있는 로렌 지방에서 머무르던 레슈친스키가 알자스의 전통 빵으로 알려진 쿠겔호프가 너무 말랐다고 불평하자 그의 요리사이자 파티시에였던 니콜라 슈토레르는 달콤한 주정강화 와인인 마데이라에 빵을 적시는 아이디어를 냈다. 레슈친스키는 달콤한 술에 적신 빵에 만족했고 이것이 최초의 바바였다고 전해진다. 어떤 이들은 레슈친스키가 불평에 그치지 않고 화가 나 마데이라 와인병을 던졌는데 이때 흘러나온 와인이 우연히 쿠겔호프에 스며들게 된 것이 시초라고 주장하지만 좀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는 이야기다.
이탈리아 나폴리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저트 바바는 격동의 유럽 역사 속에서 폴란드와 프랑스 등 국경을 넘나들다 나폴리까지 흘러와 정착했다. 럼에 적셔 만드는 게 원형인데 때로는 럼 대신 레몬으로 만든 술의 일종인 리몬첼로를 이용하거나 토핑으로 여러 가지 재료를 올려 다양하게 변주(사진)한다.
럼은 유럽 열강들이 신대륙에서 운영한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에서 탄생했다. 사탕수수즙이나 설탕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인 당밀을 발효시켜 증류한 술로 위스키나 와인에 비해 저렴해 인기였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섬에서 사탕수수즙을 짜서 만든 ‘럼 아그리콜’은 프랑스 본토에서도 유행했고, 럼을 이용한 디저트들이 생겨났는데 바바도 그중 하나였다. 프랑스에서 바바는 곧 럼을 넣어 만드는 디저트로 굳어졌다.
바바는 풀치넬라(연극 캐릭터)와 더불어 이탈리아 나폴리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음식은 변형되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바바는 럼을 적셔 만든다는 기조에는 큰 변함이 없다. 나폴리에서는 바바에 커스터드 크림이나 생크림, 초코크림을 곁들이는 등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시도됐다. 심지어 나폴리 근교의 특산품인 레몬으로 만든 리큐어인 리몬첼로를 럼 대신 사용한 ‘바바 알 리몬첼로’도 등장한 걸 보면 왜인지 모르게 바바의 모험은 아직 끝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23-08-0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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