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동서양을 막론하고 해안가에 조개껍질이 쌓여 있는 패총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걸 보면 선조는 아무래도 전자보다 후자를 선택한 듯 보인다. 어떤 동물이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숲에서 불규칙하게 널려 있는 과일을 따는 것보다 탁 트인 해안선을 따라 널려 있는 조개를 줍는 편이 아무래도 더 안전하고 간편한 방법이었으리라.
생굴은 겨울철 별미이지만, 항체가 없는 사람이 바이러스에 오염된 생굴을 먹으면 A형 간염에 걸릴 수 있다.
바닷속 패류는 종류를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패류가 그리 많지 않은 건, 지역과 문화에 따라 먹는 패류의 종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껍질이 하나 있는 전복은 패류 중 가장 원시적인 형태다. 껍질로 몸을 보호하고 바위나 해초에 달라붙어 이동하며 먹이를 먹는다. 껍질이 두 개 있는 걸 보통 조개라 부른다. 조개는 모래 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산다. 굴과 홍합은 조개처럼 껍질이 두 개이긴 하지만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지역의 바위 등에 붙어 살아간다. 가리비는 환경 의존적인 다른 패류와 달리 꽤나 진취적인 습성을 갖고 있다. 바위에 달라붙거나 모래 속에 숨지 않고 헤엄치며 다닌다. 굴이나 다른 조개들은 겨우 껍질을 여닫는 데만 관자를 사용하기에 관자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가리비는 관자가 꽤나 크다. 껍질을 열고 닫으면서 물을 내뿜어 얻는 추진력으로 이동하기에 다른 조개들보다 크고 강한 관자를 갖고 있다.
패류를 식재료로 사용할 때는 그냥 통째로 쓰기도 하지만 종류나 요리 목적에 따라 두 부위로 나누기도 한다. 새조개나 전복처럼 이동할 때 쓰는 팔(다리라고도 한다) 부분을 쓰거나 가리비나 키조개처럼 지나치게 큰 관자 부분만 이용하는 식이다. 워낙 크기가 작거나 처리해야 할 개수가 많으면 내장이나 생식기관, 근막 등을 굳이 손질하지 않아도 되지만 섬세하고 정갈한 맛을 내는 게 목적이라면 부위별로 조리해 내기도 한다. 어떤 부위를 사용하든 간에 패류를 이용해 요리한다면 반드시 기억하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온도다.
이탈리아 나폴리 어시장에서 한 상인이 홍합을 손질하고 있다.
흔히 하는 표현으로 요리하는 사람은 식재료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찮아 보이는 홍합 하나, 조개 하나라도 그 맛이 변질되거나 잃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허투루 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너무 과하게 익히지 않고 제맛을 살린다면 바지락 하나, 홍합 하나도 깊은 맛의 향연을 충분히 보여 줄 수 있다. 식재료의 가치는 어디까지나 요리하는 사람의 손에 달렸다.
2023-02-1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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