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정 시인
참으로 고마운 배려 속에 2015년 2월 23일 월요일 열아홉 제훈의 생일상을 함께 차릴 수 있었습니다. 손끝이 야물지 못한 나는 그나마 가진 재주가 받아 쓰는 일이기도 한 덕분에 제훈이의 시선으로 쓰는 육성 생일시를 담당할 수 있었다지요. 제훈이를 추억하는 가족들의 글과 제훈이가 들어앉은 사진만으로 내가 감히 제훈이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을까…. 자신 없음으로 내내 부들부들 떨다가 청탁 메시지의 한 구절에 이내 기쁜 마음으로 책상에 앉은 저였답니다. “아이에게 잘 있다는 말 한마디만 들을 수 있다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고 아이들 부모님이 공통으로 말씀하셨다니 망설일 이유가 더는 없었다지요.
고맙게도 제훈이는 내게 와 주었습니다. 내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환하게 웃으며 와 주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방방마다 창문도 활짝 열어 두고, 평소에 제훈이가 즐겨 들었다던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도 반복 재생해 놨지만, 그보다는 나를 안심시켜 주려고 내 집 어딘가에 와 있는 착한 아이구나 하는 느낌을 확실히 전해 주었습니다. 울면서 쓸 줄 알았던 육성시를 웃으면서 쓰고 있다니, 이 좋음을 이 다행을 어떻게 제훈이의 부모님에게 전할 수 있을까. 혹여 지금의 이 풍경을 두고 나를 미친 여자라며 불쾌해하시지는 않을까.
며칠 뒤 제훈이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리 제훈이 잘 있던가요, 선생님?” “네, 그럼요. 너무 잘 있어요. 그러니까 어머니, 걱정은 마시고 밥 드세요 밥. 밥 드셔야 제훈이가 걱정을 안 해요.” 예고 없이 걸려온 제훈이 어머니의 전화였고 위로를 목적으로 한 그 어떤 상투적인 글도 준비하지 못한 터였으니 내 대답은 내 심장에서 바로 튀어나간 생짜 그 자체였음을 지금도 나는 맹세할 수 있다지만, 이 비극적인 슬픔에 대해서는 여전히 가늠할 길이 없습니다. 제훈이를 낳아서 기른 어머니가 생전에 제훈이를 본 적 없는 내게 제훈이의 안부를 물어야 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누가 우리에게 이해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제훈이 덕분에 생일 부자가 된 나는 제훈이 생일마다 그 핑계로 가장 다디단 케이크를 사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내 생일에 나 먹을 케이크 사기는 마흔둘 나이 먹도록 한 번도 행하지 못한 민망함이라지만 제훈이 생일에 나 먹을 케이크 사기는 몇 해째 해오는 당당함이랍니다. 물론 혼자 다 먹을 수 없어, 또 잔칫날이기도 하니 위풍당당 지인들 불러다 케이크 앞에 앉힌다지만 포크를 쥔 지인들에게 일단은 실컷 제훈이 얘기를 해대니 귀가 따가워서라도 제훈이 그 자리에 못 오고는 못 배길 겁니다. 손에 포크 하나 쥐는 것도 잊지 않은 채로 말이지요.
잊지 않기 위해서는 자주 이름을 불러 줘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생일 축하한다, 김제훈!
2017-02-23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