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훈 변호사
완전히 외국인이라 할 수는 없지만 비자를 받아 일본에 체류하는 외국인보다 애매한 위치의 사람들. 일본제국의 패망과 함께 조선 또한 사라져 버렸고 남한이나 북한 모두 그들의 조국이 될 수 없었다. 제도권 내에서 직업을 구하고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워 많은 자이니치들이 선택했던 혹은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업이 바로 파친코다. 소설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지만, 개인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역사의 굴레를 결국 벗어날 수 없었던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조차 외면했고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자이니치의 현실을 드러내는 서사의 힘은 강력하다.
식민지배라는 원죄를 지고 있지 않을 뿐 한국도 외국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표적 사례가 화교다. 화교자본이 정착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말은 우스개가 아니다.
자이니치 문제를 취재해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대결의 역사 1945~2015’라는 책을 쓴 이범준의 지적이다. “일본의 이러한 태도를 그대로 따라한 곳이 한국입니다. 식민지를 거치면서 일본이 만든 내셔널리즘을 학습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헌법의 주어가 ‘인민 people’이지만, 한국은 일본과 똑같이 ‘국민’입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초안은 모두 ‘인민’이었습니다. ‘국민’으로 바꾸어 인권의 조건으로 국적을 요구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최근 한국은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를 받아들였다. 이 사건을 생각하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전개되는 드라마 ‘파친코’처럼, 다양한 장면이 이리저리 엇갈린다. 공군 특별기를 동원해 이들을 데려오는 감동적인 장면, ‘불안한 마음으로 학교 보내고 싶지 않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특별기여자 자녀 입학 반대 시위를 하는 일부 학부모의 모습, 울산시 교육감이 직접 나서 그들의 첫 등교에 동행하고 환영하는 현장.
인간은 한없이 약하고 이기적이지만, 이방인의 첫걸음을 품어 준 진천군민들 그리고 이를 응원하기 위해 진천군 쇼핑몰에 주문이 폭주했던 장면 또한 사람의 모습이다. 우리는 가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떠나던 나라였다. 그렇게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 타국에서 겪어야 했던 차별의 생채기는 낯선 일이 아니다. 특별기여자든 다른 이유로든 이 땅에 같이 살게 된 외국인에 대해 두려움보다 포용하는 마음이 앞설 때도 되지 않았을까.
2022-04-13 2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