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드 라투르, ‘갓난아기’, 1645~1648년
(76×91㎝, 렌미술관, 프랑스 렌)
(76×91㎝, 렌미술관, 프랑스 렌)
앳된 어머니가 잠든 아기를 소중히 안고 경이로운 듯 들여다보고 있다. 왼쪽에 있는 나이 든 여성은 성모의 어머니 성 안나. 성 안나는 아기 예수의 얼굴을 잘 비추게끔 손을 들어 촛불을 감싸고 있다. 우아하고 신중하게 손을 든 자세와 온화한 눈길이 돋보인다.
동그란 이마와 오뚝한 콧날을 한 아기는 쌔근쌔근 자고 있지만 실제로는 몹시 불편했으리라 생각된다. 아기를 꽁꽁 싸매 놓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었다. 르네상스 의사들은 이런 배내옷이 아기의 신체 발육과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주장이 먹혀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기는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에겐 귀찮은 존재였다. 유아 사망률이 높아서 한창 자랄 때까지 가족 수에 넣지도 않았다. 의사나 도덕론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아기를 시골 유모에게 맡겼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까지 유모 손에서 자라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부모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 힘들었다.
20세기 초까지 사람들은 라투르에 대해 알지 못했고, 이 그림은 풍속화를 흔히 그렸던 네덜란드 화가나 프랑스의 르냉 형제 작품으로 오인됐다. 19세기 예술비평가 이폴리트 텐은 이 그림이 두 농부 여인과 아기를 그린 풍속화라고 보았고 사실적인 묘사를 칭찬했다. 그만큼 이 그림은 세속적 풍속화와 종교화의 경계선 위에 있다.
화가는 17세기 프랑스에서 전개되던 아기 예수를 공경하는 움직임을 당대 농촌 여성의 복장과 배경 속에 버무려 놓았다. 그러나 농부 여인이면 어떻고 성모 마리아면 어떻단 말인가? 이 그림은 이미 이 자체로 성스럽지 아니한가? 적갈색으로 통일된 색조, 명암의 선명한 대조가 이 장면을 정적과 신비스러움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2022-05-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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