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길영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인상 깊게 봤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뉴욕비평가협회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을 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보고 듣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기본이며, 이런 생각을 내게 알려 준 것은 영화다.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면 외부의 정보를 받고 처리하는 동안에도 진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우리 시대는 남의 말과 모습을 찬찬히 듣고 살피기보다는 내 말을 더 많이 강하게 해야 인정받는 세상이 됐다. 내 주장을 위해 더 많은 정보를 모은다. 그런데 그렇게 정보를 모으는 동안 그 정보가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는 잊는다. 생각할 여유가 사라진다.
누구나 결핍보다는 넘침을 좋아하고 빈곤보다는 풍요를 갈망한다. 정보도 그렇다. 하지만 과연 넘치는 정보 속에서 인간은 더 현명해졌는가? 어떤 연구에 따르면 현대인들이 하루에 받아들이는 정보량이 중세시대 인간이 평생 알 수 있었던 정보보다 많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인이 중세인이나 고대인보다 더 지혜로워졌는가? 현대 문명에서 더 똑똑해진 건 인간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같은 기계라는 말도 나온다. 그리스ㆍ로마 시대를 다룬 책이나 영화를 보면 문득 인간의 진보에 대해 회의적이게 된다. 정신과 영혼의 크기를 잴 수 있다면 나를 비롯한 현대인들은 참담한 결과를 얻을 것이다. 한때는 지식과 정보를 남보다 더 많이 갖는 것이 지혜인 양 여겨졌다. 그런 시대는 지났다. 인터넷에는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정보가 넘쳐난다. 이 시대의 지혜는 쏟아지는 정보를 더 빨리,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가 과연 가치 있는 것인지를 가리는 안목, 그런 정보가 삶과 영혼과 정신의 크기를 넓고 깊게 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통찰력에 달렸다.
무엇이든지 모으고 축적하려는 건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속성이다. 그래서 지식과 정보도 축적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축적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왜 그런 정보를 모으는지는 까맣게 잊게 된다. 일종의 정보 물신주의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다. 쌓이는 정보만 남고 사람이, 정신이, 영혼이 사라진다. 그 정보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따져 보고 의미를 묻는 일은 소홀해진다. 그래서 내리는 결론. 우리 시대는 너무 정보가 많아서 문제고, 생각하고 묵상하는 영혼의 시간이 부족해서 문제다. 과연 인류는 진보한 것인가?
2022-05-2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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