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쓰다/손택수
잡초인 줄 알았더니 어수리
잎이 쓰다
우리면 깊은 맛이 난다
쓴다는 게
쓴 잎을
우리는 일 같구나
쓴 잎에서 단맛을 찾는 일 같구나
누구에겐 그저 쓴 잎에 지나지 않겠지만
잎의 씀을
쓰디씀을
명상하는 일 같구나
뜯은 자리마다 후끈한 풀내
진물이 올라온다
깨진 무릎에 풀을 짓이겨
상처를 싸매 주던 금례 누나
생각도 난다
상처에 잎을 맞춰 주던 잎이
내 몸 어디에는 아직 남아 있어서
쓴다
이미 쓴 잎을
써버린 잎을
잎, 나뭇잎, 잎사귀, 그리고 또 같은 발음의 다른 이름 입. 굳이 따지자면 식물의 입은 잎이어서 잎에 말이 있고 표정이 있고 또 다른 입으로도 가서 입맞춤이 된다. 입을 버리면 가을이 된다. 침묵의 계절을 맞아 잎은, 입은 허공을 내려온다.
어느 날 무심히 길가에서 손에 닿는 잎을 하나 따 입에 넣었더니(유아기의 아기들이 다 그렇듯이) 쓰디쓰다. 그런데 뒷맛으로 모르던 어떤 깊은 단맛이 남았으니 아, 이게 우리네 글 농업 종사자의 쓰는 일과 닮았다.
‘진물이 올라오는’ 상처를 우려내면 먹을 만한 것이, 아니 약이 될 만한 것이 된다. 한번 난 상처는 아물어 없어지지 않고 생의 안을 떠돈다. 그것이 우려지면 시도 되고 사랑도 되는 거라고 이 시는 잎처럼 말한다.
장석남 시인
2022-12-0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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