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당신이 찾아온 어제는
둘이 서먹하니 마루에 앉아 있습니다
빈 쟁반의 보름달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당신이 내 옆에 가까이 있어 본 지도
하도 오래되었는데, 내가 부른 것도 아닌데
나는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엔 미워 불러볼 이름 하나 없이 맑고
잡초 자란 마당가에
우리 둘이 소복하니 무덤처럼 앉아
말없이 백 년 동안 한 얘길 하고 또 하며
당신이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지러지는 달의 얼굴이
소금처럼 소슬하고 짠 빛으로 와서
우리의 식은 재를 만져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가벼이 고운 가루인 줄 몰랐을 때도 있었습니다
조용히 산이 마루로 다가와 당신을 보자기에 싸듯 덮어 달쪽으로 데려가도록
나는 꿈에도 오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용서가 그런 줄 알게 되었습니다
명동의 허름한 고깃집에서 시인에게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주먹 쥐고 덤비는데, 먼저 웃는 사람을 당해 낼 도리가 없지요. 싸우기도 전에 용서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시인은 제 등을 두어 번인가 쓸어 주면서 밥 위에 고기를 올려 주었던가요.
이제 와 몇 줄의 글로 면죄받으려는 마음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에게 보여 준 마지막 모습이 토라진 얼굴이어서 미안합니다. ‘용서받는 일’은 오래 부끄러움을 기억하는 일인가 봅니다. 그가 ‘꿈에도 오지 않도록’ 가벼이 떠나길 바라는 마음인가 봅니다.
그와 ‘서먹하니 마루에 앉’은 풍경을 그려 봅니다. 미안했다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건네면 ‘미워 불러볼 이름 하나 없’는 그가 맑은 얼굴로 괜찮다고 말해 줄 것만 같습니다. 2020년 10월 10일. 한 줌의 재가 된 그를 떠올리며 가을밤 달을 봅니다.
신미나 시인
2022-10-2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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