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Floaters/사이먼 고 · 침묵/이창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Floaters/사이먼 고 · 침묵/이창수

입력 2022-10-20 20:06
수정 2022-10-21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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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희망, 절망 같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들을 다양한 도상으로 표현. 10월 28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서정아트부산.

침묵/이창수

아버지 참나무 베어다

어머니 목욕물 데운다

더운물에 찬물 붓는 소리

더운물에 손 담그는 소리

다시 한 바가지 찬물 붓는 소리

손으로 물 휘젓는 소리

치매 앓는 어머니 안아다

아버지가 목욕시키는데

머리 감기는 소리

물 끼얹는 소리

침묵은 참나무보다 무겁고

산불 지나간 자리

연둣빛 고사리 돋는 소리

침묵은 모든 언어의 뿌리. 모든 말은 뿌리로 돌아가면 뜨거운 침묵에 닿는다. 그것은 어느 유행가에 따르면 ‘메마른 입술’을 만들고 더 들어가면 모든 오해를 풀어 주고 투명한 의미를 비춘다.

이 운(?)이 없는 아버지는 어머니의 침묵에 또한 뜨거운 침묵으로 복무해야만 한다. 운이 없다고 하니 가볍디가벼운 입술의 말이지만 실은 무겁고 깊은 사랑의 침묵이다. 모든 남정네는 부인의 손에 주검을 맡겨야 운이 좋은 셈인데 남편에게 자신의 최후를 부탁하는 부인의 운세는 또 어떤 것일까? 결론은 나쁘지 않음!

어느 날 옆방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목욕시키는 소리를 듣는다. 단번에 맞춰지지 않는 물 온도…. 서로의 살아온 내력도 그랬을 것이다. 순전한 ‘소리’의 기별로만 짐작하는 먹먹한 ‘씻김’의 영상이다.

젊은 한 시절 뜨겁던 마찰의 기억은 휘발되어 없고 대지에 가까워진 어머니의 몸뚱이에 물을 얹는 아버지의 소리는 그러나 처음 들어 보는 속 깊은 소리다. ‘산불 지나간 자리’에만 ‘고사리 돋는 소리’가 나는 법! 그대로 회한이고 뭐고 미뤄 두고 어여쁜 소리로만 듣고 옷소매 잡아 끌어 눈가를 훔치자!

장석남 시인
2022-10-2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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