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클 트라이앵글 01/하혜리
59.4×42㎝, 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 2020
벽 속의 또 다른 벽돌/이설야
우리는 벽을 조금씩 밀었다
한 손에는 꽃을 들고
한 손에는 죽은 물고기를 들고
반대편에서 던진 벽돌로 벽은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각자 던진 벽돌을 세면서
어차피, 벽엔 또 다른 벽돌이 쌓이겠지
어차피, 넌 벽속의 또 다른 벽돌일 뿐이야
한 발과 또 다른 한 발이, 벽 아래 그어진 금을 넘는다
그것은 벽 속에 낀 그림자를 꺼내는 일
우리가 우리를 넘는 일
조금씩 허물어지던 벽이 등을 돌려,
우리는 각자의 얼굴을 깨기 시작한다
‘벽’(壁)이라는 한자를 써 봅니다. 흙 토(土) 자 위에 피할 피(?) 자를 올린 것이 벽돌을 차곡차곡 쌓은 모양새로군요. 벽(壁) 자는 흙을 쌓아 외부의 시선을 피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벽은 둘레를 세우고 금을 긋는 말이지요.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아 교류가 끊어진 사람을 보고 ‘벽을 쌓고 지낸다’고 비유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벽 속에 낀 그림자를 꺼내는 일이야말로/우리가 우리를 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나’라는 금이 ‘우리’라는 선으로 이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벽을 허물어야 할까요. 이 시를 읽으며 오래전 소원해진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그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함께 담장을 밀어 보자고. 등을 돌려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자고요. 이제 와 그 얼굴을 떠올리자니 마음이 폐사지에 뒹구는 벽돌과 같습니다.
신미나 시인
2022-08-1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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