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점쟁이가 내게 말했었죠
“당신은 전생에서 이생으로 내려올 적에
길가에 난 백합꽃을 꺾었어. 백합꽃
꺾은 죄로 이생에서 이 고생을 하는 거라구”
가끔씩 힘들 때마다 “내려오다 백합은
왜 꺾어 이 고생이누, 아니 하필이면
내가 내려오는 그 길에 백합은 왜 피어 있었누”
라고 생각했지만, 그 참 이제 보니 그건
아름다운 상징일 수도 있다는 생각 드는군요
아니 상징이 아니라 어쩌면 필연이었다는
하필이면 거기에 백합이 피어 있었던 것도
하필이면 내가 그것을 꺾어 갖고 왔던 것도
어쩌면 필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고통이 정화된 그 자리에
백합 한 송이 피어나, 이제 비로소 그 존재를,
그리고 용도를 내게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내가 당신의 힘을 빌려 내 무수한 전생들
그리고 이생에서 보냈던 모든 시간들을
폐지해 버린 자리, 내 마음의 작은 빈터 안에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꽃,
백합꽃을 선물로 놓아 드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 한 송이 백합이 어느 날 넘실대는 환한
빛 덩어리로 풀려 버릴 수 있길 바라면서
백합은 초여름의 꽃이지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선물로 드리기 좋은 꽃입니다. 상상만으로 천지사방에 백합 향기 날리는군요. 지난봄에 당신은 무슨 선물을 하였는지요? 이번 여름 누군가에게 꼭 선물하세요. 선물하는 사람을 한 단어로 뭐라 하는지 아세요? “신”입니다. 모든 창조 또한 선물의 다른 이름이지요.
곽재구 시인
2022-06-1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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