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이 멀면 명길 짧다’는
할머니 말씀이 피었다
노랑 저고리 분홍 치마 입으신 할머니
어린 눈에 할미가 하늘만큼 이뻤다
낮은 곳에 산 채송화 하늘이 멀었다
여름 속을 뛰어든 꽃씨
저 세상으로 든 그 저녁
씨 뿌리지 않은 마당에
안티푸라민 냄새가 나를 업었다
눈길이 멀면 명길이 짧다. 평범한 우리네 어르신들의 말씀입니다. 세상 사는 이치가 새록새록 스며 있습니다. 높은 뜻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이는 평탄한 삶을 꾸리기 힘듭니다. 대충 눈 감고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마음속에서야 어찌 ‘눈길이 먼 삶을 살아라’라고 말하고 싶지 않겠는지요. 채송화는 키가 작은 꽃입니다. 마당 앞이나 장독대 주위에 분홍색 노란색 빨간색 흰색으로 핍니다. 한국인 마음속의 색이지요. 키는 작아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싶은 꽃. 그래요, 눈길이 멀면 명줄이 짧다, 이 말은 눈길을 짧게 가지고 살라는 말이 아니라 몸집은 작아도 눈길만은 높고 길게 살라는 우리 어르신들 지혜의 말씀 아니겠는지요.
곽재구 시인
2022-05-20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