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무지개/이유진
90.9×65.1㎝, 캔버스에 아크릴과 오일, 2022
목단/이영은
먼지 내린 옛집 뒷마루 앉아
겨울 햇살 비스듬히 메주콩을 가려낸다
보리밥 삶는 냄새
대나무 바구니 기둥에 걸린다
잔치상 한가운데 누구도 손대지 않는
맑고 가난한 동치미 한 그릇
엄마는 꽃이 되었을까
고사리 같은 그리움 지문으로 찍힌다
옛 마당 뜰
여느 해처럼 목단꽃 피어
엄마 냄새 맡는 오후가 지고 있다
목단꽃과 자운영 꽃은 함께 핀다. 보라색 꽃 무더기 사이를 걸어가며 내가 인간이기 이전을 생각하고 인간이 된 이후를 생각한다. 바람이 불면 보라색 꽃 무더기들이 해일처럼 달려든다. 꿈 같은 이 현실이 좋다. 인간이 된 이후 내가 꾼 꿈들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 부끄러운 것이다. 어디선가 보리밥 삶는 냄새가 나고 먹빛 소반 위에 맑은 동치미 한 그릇이 놓인다.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나도 이 세상도 없었을 것이다. 시도 사랑도 별도 눈물도 없었을 것이다. 봄날의 목단꽃밭 속에 사랑하는 세상이 있다. 파랑새가 날아가고 보랏빛 바람이 불고 지상의 소금이라고 믿는, 사랑이라고 믿는 시들이 태어난다.
곽재구 시인
2022-04-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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