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의 도시경제학 교수인 에드워드 글레이저가 쓴 ‘도시의 승리’에는 ‘도시가 전원보다 더 친환경적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아가 그는 교외의 전원주택 단지야말로 환경적으로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거주 방식이라고 일갈한다. 이런 주장을 접하면 마치 상식이 정면으로 도전받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울창한 숲속에 집이 띄엄띄엄 있고 각종 동물이 오가는 전원 주거지가 답답하고 공기 나쁜 도시보다 오히려 덜 친환경적이라니?
결국 밀도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저밀도의 위험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밀도란 단위 면적 안에 있는 어떤 것의 총량이다. 그 어떤 것이 사람이면 인구 밀도고 건물이면 건물 밀도다. 인구 밀도는 보통 평방킬로미터당 몇 명으로 나타내며 건물의 밀도는 ‘용적률 몇%’라고 이야기한다. 이 두 개의 밀도가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삶의 풍경이 만들어진다.
인구가 같다는 전제하에서 저밀도, 즉 용적률이 낮은 지역은 그만큼 넓은 땅을 필요로 한다. 반대로 고밀도로 갈수록 필요한 땅의 면적은 줄어든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산수다. 여기에 인간의 삶이라는 변수를 도입해야 한다. 사람은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아침저녁으로는 출퇴근을 하고 여기저기 볼일을 보러 다닌다. 그런데 고밀도라면 모든 것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이동 거리가 줄어든다. 에너지와 시간을 그만큼 아낄 수 있다. 이상적으로는 일상 대소사를 걸어 다니며 해결할 수도 있다. 특별한 기술이나 제도 없이도 저절로 보행 위주의 친환경 도시가 되는 것이다.
저밀도는 반대의 상황이다. 일단 이동이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15분 정도 걸어갈 거리, 즉 1㎞ 이상이 되면 사람들은 걷지 않고 차를 탄다. 도로, 지하철 등 도시 인프라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도 엄청난 자원이 필요하다. 극단적으로는 볼펜 한 자루를 사기 위해 차를 몰고 한참을 운전해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미국 대도시 주변의 교외 전원 주거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삶의 풍경이다. 에드워드 글레이저가 지적한 바로 그런 상황이다.
결국 인구가 같다고 보면 도시가 필요로 하는 땅의 면적,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와 시간, 그리고 삶의 편리함 등의 측면에서 저밀도보다는 고밀도가 더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온다. 지구 전체의 환경이라는 총체적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주장을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도시 내부 환경의 질이다. 밀도를 높이면서도 어느 정도의 쾌적성을 확보해야 한다. 일단 고밀도를 전제로 기본적인 틀을 세운 후, 여기저기에 비어 있는 장소를 만들 필요가 있다. 공원, 발코니, 테라스, 옥상마당 등이 바로 그런 곳이다. 이런 공간 또한 크기보다는 위치가 훨씬 더 중요하다. 멀리 있는 거대한 공원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작은 공원이 우리의 삶을 더 풍족하게 한다.
서울의 평균 용적률은 160% 정도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 파리가 250% 내외인 것과 비교하면 적어도 건물에 관한 한 서울은 놀라울 정도로 저밀도 도시다. 그런데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의 용적률이 200%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밀도에 대한 한국의 기준이 얼마나 낮은가를 보여 주는 사례다. 여기에 인구밀도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니 체감하는 밀도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공간을 점유하기 위한 극도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평균 밀도를 상당히 높이면서도 쾌적성을 유지하고, 도시 권역을 줄이거나 적어도 더이상 늘리지 않는 것, 즉 고밀도의 콤팩트한 도시로 변신하는 것이야말로 서울의 미래에 관한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황두진 건축가
인구가 같다는 전제하에서 저밀도, 즉 용적률이 낮은 지역은 그만큼 넓은 땅을 필요로 한다. 반대로 고밀도로 갈수록 필요한 땅의 면적은 줄어든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산수다. 여기에 인간의 삶이라는 변수를 도입해야 한다. 사람은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아침저녁으로는 출퇴근을 하고 여기저기 볼일을 보러 다닌다. 그런데 고밀도라면 모든 것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이동 거리가 줄어든다. 에너지와 시간을 그만큼 아낄 수 있다. 이상적으로는 일상 대소사를 걸어 다니며 해결할 수도 있다. 특별한 기술이나 제도 없이도 저절로 보행 위주의 친환경 도시가 되는 것이다.
저밀도는 반대의 상황이다. 일단 이동이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15분 정도 걸어갈 거리, 즉 1㎞ 이상이 되면 사람들은 걷지 않고 차를 탄다. 도로, 지하철 등 도시 인프라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도 엄청난 자원이 필요하다. 극단적으로는 볼펜 한 자루를 사기 위해 차를 몰고 한참을 운전해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미국 대도시 주변의 교외 전원 주거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삶의 풍경이다. 에드워드 글레이저가 지적한 바로 그런 상황이다.
결국 인구가 같다고 보면 도시가 필요로 하는 땅의 면적,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와 시간, 그리고 삶의 편리함 등의 측면에서 저밀도보다는 고밀도가 더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온다. 지구 전체의 환경이라는 총체적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주장을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도시 내부 환경의 질이다. 밀도를 높이면서도 어느 정도의 쾌적성을 확보해야 한다. 일단 고밀도를 전제로 기본적인 틀을 세운 후, 여기저기에 비어 있는 장소를 만들 필요가 있다. 공원, 발코니, 테라스, 옥상마당 등이 바로 그런 곳이다. 이런 공간 또한 크기보다는 위치가 훨씬 더 중요하다. 멀리 있는 거대한 공원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작은 공원이 우리의 삶을 더 풍족하게 한다.
서울의 평균 용적률은 160% 정도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 파리가 250% 내외인 것과 비교하면 적어도 건물에 관한 한 서울은 놀라울 정도로 저밀도 도시다. 그런데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의 용적률이 200%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밀도에 대한 한국의 기준이 얼마나 낮은가를 보여 주는 사례다. 여기에 인구밀도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니 체감하는 밀도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공간을 점유하기 위한 극도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평균 밀도를 상당히 높이면서도 쾌적성을 유지하고, 도시 권역을 줄이거나 적어도 더이상 늘리지 않는 것, 즉 고밀도의 콤팩트한 도시로 변신하는 것이야말로 서울의 미래에 관한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2018-12-1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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