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대] 파머스 캐리/김도은 IT 종사자

[2030 세대] 파머스 캐리/김도은 IT 종사자

입력 2022-11-21 20:24
수정 2022-11-2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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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은 IT 종사자
김도은 IT 종사자
‘결혼’과 ‘연애’를 ‘해야 할 일’에서 지우고,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범주에 넣으면서 많은 것들이 해방되고 동시에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의 목록이 늘었다. 우선 여성과 남성의 역할로 나뉘었던 잡일들을 모두 혼자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했다. 크게 거창한 것은 아니고, 마트에서 한가득 장을 보고 나와 짐을 실어 나르는 것이라든지, 매립된 천장 조명의 전구를 교체하는 것과 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남성에게 부여한 그런 일들 말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됐을 때에도 나는 혼자일 텐데 무엇이든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미래를 위한 연금저축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듯한 위기감이 느껴졌다.

세면대 물이 새거나 벽을 뜯어 전기를 살펴봐야 할 때 든든한 인터넷 해결사인 블로그나 영상들이 해결법을 알려 주기도 할 테고, 그래도 문제가 있다면 자본주의가 나를 구원하시며, 전문가를 부르면 될 일이다. 그러나 정말 매번 그럴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무거운 것 나르기. 일주일치 장만 보고 오더라도 양손 가득 무거운 것을 들고 와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집에서 크고 작은 집안일을 할 때에도 손에 물 묻히는 것만큼이나 힘쓰는 일은 피할 수 없었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가정일만 하심에도 불구하고 힘을 번쩍번쩍 쓰시는 것은 하루이틀의 노하우로 쌓인 일이 아니기에 나도 훈련을 해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빨리 힘깨나 쓰는 운동을 좀 해 놔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몇 해 전부터 크로스핏을 시작했다. 일반적인 헬스장이나 다른 운동이 아니라 크로스핏을 선택한 이유는 정말로 힘이 세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크로스핏에서 하는 운동 중 ‘파머스 캐리’라는 동작이 있다. ‘농부의 나르기’라는 의미로 양손에 무거운 덤벨이나 케틀벨을 들고 운동장을 오가기만 하는 운동이다. 이 단순한 동작을 보고 바로 이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무거운 장바구니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마트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나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16㎏의 케틀벨을 양손에 들고 운동하는 동안, 내려놓고 쉬고 싶은 순간이 몇 번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이 무거운 것을 옮기는 것은 앞으로도 홀로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견뎌 냈다. 덕분에 그날만은 괜찮은 기록으로 기분 좋게 운동을 마칠 수 있었지만,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의 삶의 무게는 해를 거듭할수록 무거워질 것이고 반대로 신체는 나약해질 것이다. 무거운 것을 든다는 것,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어떠한 연금 상품보다 가치 있는 ‘가능성’이라는 이자를 보장하는 기회가 돼 줄 것만 같다. 그렇기에 오늘도 그 무거운 것들을 한번 들어 보려고 한다.

2022-11-22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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