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지진계로 본 기준의 조건

[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지진계로 본 기준의 조건

입력 2020-08-31 20:26
수정 2020-09-01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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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지진은 인류 역사와 함께했다. 하지만 지진 파형 기록이 가능해진 것은 1900년에 이르러서이다.

초기 지진계는 땅의 흔들림에 따라 용수철에 매달린 추의 운동을 기록했다. 지진계의 발전으로 지진파형을 활용해 지진위치, 발생시간 결정이 가능해졌다. 특히 지진의 크기와 거리에 따라 진폭이 달라진다는 점에 착안해 지진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지진의 위치, 발생시간, 규모는 가장 먼저 결정되는 지진의 기본 정보로 진원요소라고 일컫는데 사람의 생년월일과 주소에 해당한다.

지진 규모는 다른 기본 정보와 달리 측정에 앞서 지진 크기에 대한 기준 마련이 우선이었다.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리히터 규모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 지진학 교수 리히터에 의해 1935년 고안된 규모식이다. 리히터는 지진계에 기록된 지진파의 진폭을 활용해 지진 규모를 결정하는 방식을 만들었다. 리히터는 측정의 편의를 위해 당시 캘리포니아 지역에 설치된 우드앤더슨 단주기 지진계에 기록된 진폭 크기를 지진 규모로 즉시 환산할 수 있는 계산식을 만들었다. 리히터는 100㎞ 떨어진 우드앤더슨 지진계에 1마이크로미터(㎛) 지진동을 만드는 지진을 기준 지진으로 삼아 상대적 크기를 측정했다. 규모 1 차이가 나는 두 지진 간 지진에너지 차이가 32배인 까닭도, 리히터 규모식에서 설정한 규모 1 차이가 공교롭게도 지진에너지 32배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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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캘리포니아와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 리히터 규모식이 사용됐다. 하지만 이 규모식에도 몇 가지 제약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우드앤더슨 지진계 기록에 기반을 둔 점이다. 우드앤더슨 단주기 지진계는 전 세계적으로도 일부 지역에 제한적으로 설치돼 있고, 지역별로 서로 다른 지진계가 활용되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지진 규모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기록된 파형을 우드앤더슨 지진계 기록으로 변환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더구나 단주기 지진계 기록은 먼거리 지진과 대형 지진의 규모를 평가하는 데는 부적합했다. 오늘날 우드앤더슨 지진계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사용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일관성 있는 지진 규모 결정을 위해, 여전히 우드앤더슨 지진계를 기반으로 한 지진 규모식이 사용되고 있다. 지진 규모 결정을 위해 더이상 쓰이지 않는 지진계 기록을 필요로 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물론 현대 디지털 지진계 기록에서 우드앤더슨 지진계의 규모 측정값을 측정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고안돼 활용되고 있다. 리히터도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크기를 손쉽게 측정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국제 표준이 돼 지속적으로 사용될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손쉽게 쓰기 위해 개발된 기준이 널리 사용되는 예는 많다. 영미문화권에서 사용하는 인치, 피트 같은 길이 단위가 대표적이다. 한번 만들어진 기준과 규범은 시간이 흘러도 바꾸기 어렵다. 기준이 바뀔 경우 사회적 혼란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지진 규모식처럼 이제껏 없던 기준이 만들어질 때는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관련 현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하고, 다양한 상황에 융통성 있는 적용이 가능해야 한다. 리히터 지진 규모식 개발로 규모별 지진 발생 빈도 추정이 가능해졌고, 지진 발생 원리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가능해졌다. 작은 노력이 이후 많은 큰일들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곤 한다.
2020-09-0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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