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구 베이징 특파원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S를 들고 있으면 중국 젊은이들이 힐끗힐끗 쳐다본다. 요즘 아이폰에 밀리고 있지만 그래도 갤럭시는 중국인이 갖고 싶어 하는 명품 휴대전화다. 영화관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덥다고 웃통을 벗고 활보하는 중국인을 보며 “너희는 아직 멀었어”라며 무시한 적도 있다.
그런데 요즘 상황이 바뀌었다. ‘메르스 민폐국’의 국민으로 숨죽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유학생은 지하철 안에서 중국인들이 “한국에도 낙타가 많은가 봐. 한국 정부가 낙타 고기를 익혀 먹으라고 했대”라고 수군거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어떤 교민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린 아들이 한국어로 말을 하는데 함께 탄 중국인들이 모두 째려봐서 아이 입을 막았다고 한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프라임 뉴스 시간에 한국의 메르스 상황을 매일 3~4꼭지씩 내보낸다. 메르스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은 보기조차 겁난다. 그중 가장 뼈아픈 게 “우리를 지저분하다고 손가락질하던 한국놈들…”로 시작하는 댓글이다. 만일 한국 때문에 중국에도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다면? 아마 한국인들은 전원 격리되거나 한국인 밀집 지역인 왕징이 통째로 봉쇄될지도 모른다.
너무 오버한다고? 13억 인구를 ‘통제’하는 중국이다. 지금은 중앙기율위 서기로 반부패 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왕치산이 2003년 베이징 시장으로 있으면서 사스를 퇴치했던 방법은 간단했다. 바로 베이징 봉쇄였다. 중국 정부가 한국인이 많이 오가는 베이징, 상하이, 랴오닝, 산둥, 지린, 광둥 등에 순시조를 파견해 메르스 방역 실태를 감찰하기로 했다는 19일자 조간신문을 보면서 감시망이 점점 좁혀 오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사실 중국에 오기 전에는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는 한국의 현실에 분노했다. 그러나 막상 중국에 와 보니 공산당 통제 체제보다는 한국이 낫다는 걸 새삼 느꼈다. 누구든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대통령을 욕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중국보다는 나아 보였다. 정부의 무능으로 비록 세월호 참사를 막지 못했지만 양쯔강 유람선 침몰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의 울음까지 틀어막는 중국 정부보다는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메르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우리 정부를 보면서 중국에 대해 느꼈던 약간의 우월감이 싹 사라졌다. 내 식구가 감염될까 두려움에 떠는 시민을 향해 “괴담을 퍼뜨리면 엄벌하겠다”는 대한민국 정부는 유람선 참사 15일 만에 시신 442구를 모두 화장해 애도 정국을 종료시킨 중국 정부보다 더 염치가 없었다. 같은 전시 행정이라도 초등학교에 가서 “메르스는 중동식 독감이니 손을 잘 씻으면 된다”고 말하는 박근혜 대통령보다 유람선 참사 현장으로 달려가 수습된 시신에 일일이 고개를 숙인 리커창 총리가 더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쓰레기 분리 수거도 하지 않는 나라에 와서 조국의 역병을 걱정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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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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