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기 칼럼] 위안부 합의 전철 밟지 않으려면

[황성기 칼럼] 위안부 합의 전철 밟지 않으려면

황성기 기자
황성기 기자
입력 2019-09-11 20:46
수정 2019-09-1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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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기 평화연구소장
황성기 평화연구소장
한 달간 대한민국을 ‘조국’ 두 글자에 몰입시킨 태풍이 지난 자리는 허허롭기는커녕 더 뜨겁다. 빈수레마냥 요란했던 청문회에서 건질 것은 딱 하나, 조 후보자가 남긴 한일 관계 발언이다. 무소속 박지원 의원이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의견을 묻자 조 후보자는 서슴없이 답변했다. 첫째, 대법원 판결은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 둘째, 외교 협상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셋째, ‘1+1’(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의 출연금으로 배상)이란 기본에 정부가 플러스 알파로 어떤 형식으로 참여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7월 26일 민정수석 교체 전까지 청와대에 몸담았던 조 후보자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판결, 7월 4일 일본 정부의 3개 품목 수출 규제 시행, 수출심사 우대국인 화이트리스트 제외 예고까지 일련의 한일 공방을 지켜본 조 민정수석이었다. 그는 수석보좌관회의 등에서 의견도 냈을 것이다. 청문회 답변이 사견을 전제로 한 것이긴 해도 청와대의 일본 해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중에서도 ‘1+1+알파(α)’가 눈에 띈다.

한일 극한 대립의 근원은 개인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다. 1965년 청구권협정에 의한 개인청구권 소멸을 주장하는 일본은 이제 와서 배상이 웬 말이냐,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주장한다. 민사 판결에 개입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한국 정부는 한일 경협 자금의 혜택을 누린 한국 기업과 피고인 일본 기업이 함께 배상하는 ‘1+1’안을 6월 19일 일본에 제안했으나 일언지하에 거부당했다. 공식적으로 한일은 ‘1+1’안 이상 나아가지 않고 있다. 이낙연 총리가 일본 정계 실력자에게 ‘1+1+α’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총리실은 부인했다. 총리실이 부인한 ‘1+1+α’를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법률가 조국 법무장관이 되살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일의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가담하는 플러스 알파안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 입을 모은다. 정부와 한국 기업이 실질적인 배상을 떠맡고, 일본 기업은 자발적으로 기금 출연에 참여하는 안이다. 혹여 일본 측에서 돈을 내지 않더라도 사과를 받는 선에서 매듭을 짓자는 게 ‘1+1+α’의 골자다. 65년 협정에서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개인청구권의 존재 여부를 한일 정부 간에 일치시키는 과정을 생략하고, 대법원과 일본 최고재판소의 엇갈린 판결을 각자 인정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 판결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 둘째, 배상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려면 입법을 해야 하는데 과연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겠는가다. 셋째, 이런 애매한 해결 방식을 이춘식 할아버지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납득하고 수용할지 의문이다.

65년 체제의 결함인 식민지배의 불법성, 청구권 해석에 대한 합의가 없는 한 향후 전개될 한일 협의가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의 전철을 밟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이병기·야치의 밀실회합을 연상시키는 대일 특사 파견(뒤늦게 공개됐다)처럼 정치 봉합으로 해결하려 든다면 피해자의 외침은 반영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면서 적용한 원칙이 피해자 중심주의다. 100억원짜리 한일 재단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뜻에 반하는 것이라 사실상 해산시켰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원고들이 바라는 해결책은 일본 기업과 화해해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받는 것이다. 이런 소망이 이뤄지지 않으면 ‘1+1+α’도 종국에는 피해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일왕 즉위식(10월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11월 22일),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2020년 1월) 등 몇 가지 시한이 거론된다. 이 가운데 일본 기업의 자산이 법원에 의해 매각되면 소강상태인 한일은 폭발할 것이라는 심각한 경고도 나온다. 하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일본 정부가 보복의 강도를 높인다면 때리는 놈 주먹도 아프다고 서로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강제동원은 역사이자 인권 문제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원칙과 강단을 갖고 풀어 가야 한다. 미국의 중재를 바라는 태도 또한 문재인 정부스럽지 않다. 한일 대립은 장기전에 돌입했다. 일본이 비열한 ‘수출 허가 수도꼭지’를 옥죄고, ‘한국 때리기’를 안방에서 소비하더라도 이겨내지 못할 대한민국이 아니다. 새 한일 관계를 만드는 장정은 이제부터다.

marry04@seoul.co.kr
2019-09-1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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