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뜨겁게 태어난 그 아이를 보호하려면/조희선 사회2부 기자

[마감 후] 뜨겁게 태어난 그 아이를 보호하려면/조희선 사회2부 기자

조희선 기자
조희선 기자
입력 2022-04-07 20:32
수정 2022-04-08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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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선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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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아기들이 해님처럼 둥글둥글 태어납니다. 가난하고 슬픈 우리 한국 나라에도. 그러나 아기들은 별처럼 자랍니다. 꽃처럼 키가 큽니다. 뜨겁게 뜨겁게 키가 큽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이 1974년 ‘여성동아’에 발표한 ‘새해 아기’의 마지막 문단이다. 아기 곰, 아기 옥토끼, 아기 다람쥐, 송아지, 망아지 등 작은 짐승들과 하느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기가 탄생한다. 해님같이 뜨거운 기운을 품고 태어난 아이는 여러 아기 동물과 하느님의 축복 속에 넓고 환한 사람 세상으로 향한다. 온 누리에 향기를 퍼뜨리는 아름다운 꽃이 되리라는 기대를 한껏 받은 채. 짧은 동화에는 작고 귀한 존재가 이 땅에 다가오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아무리 어려운 시절이라고 해도, 아무리 절망적이라고 해도 아기는 뜨거운 관심 속에 무럭무럭 자라야 마땅한 법이다.

안타깝게도 오래된 동화 속에 나온 이 당연한 사실은 현실 속에서 잊힐 때가 많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사랑보다 아픔을 먼저 경험하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가 성인이 되기 전에 세상에 태어나서, 집이 가난해서, 부모로부터 정신적·신체적 괴롭힘을 당해서, 부모가 장애를 겪고 있어서, 부모가 징역살이를 하고 있어서 떨어져 사는 ‘보호대상아동’이 한 해 5000여명에 이른다.

보호아동은 주로 아동양육시설(보육원)에서 성장 시기별로 각각 다른 어려움을 마주하며 삶을 견딘다. 하루에 세 번씩 바뀌는 ‘보육사 엄마’의 보살핌 속에서 아이는 ‘엄마들’의 시선을 한 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한창 공부를 해야 할 때, 여건이 녹록지 않아 배우고 싶은 것도 마음껏 배우기 어렵다. 나이가 차서 시설을 나와도 당장 세금을 어떻게 내는지, 청약 통장을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 막막하다. 한 아이의 몸과 마음이 온전히 자랄 만큼 충분한 온기가 더해지지 않은 까닭이다.

‘보호대상아동’이라는 법적 용어는 국가가 이 아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현실은 어떤가. 원칙적으로 가정과 유사한 형태, 즉 입양이나 위탁 가정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시설에서 집단생활을 한다. 시설의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음의 병’을 앓는 아이 중 다수는 제대로 된 심리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돼 있다. 심지어 지자체의 재정 상태나 관심도에 따라 해당 지역 시설 아동이 받을 수 있는 복지의 양과 질도 달라진다. 어느 지역, 어느 시설에 사느냐에 따라 보호 아동의 삶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아이들에게 투표권이 있었으면 지자체의 관심이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올까.

정부는 2019년 ‘보호가 필요한 아동은 국가가 확실히 책임진다’는 내용의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했다. 각 지자체를 컨트롤타워로 삼고 아동 보호 전 단계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선언이다. 다만 중요한 게 빠졌다. 인력과 예산이다.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인적·물적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는 결국 아이들의 삶만 메말라 간다.

자주 인용되는 이 문장만큼 지금 우리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말이 또 있을까.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한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한 가정이나 개인에게만 떠밀 수 없다. 국가와 사회의 따사로운 보살핌이 보태질 때 아이는 뜨겁게 키가 큰다. 정부의 선언이 허언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새해마다 뜨겁게 태어난 한 아이를 보호하려면 우리의 온 힘이 필요하다.
2022-04-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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