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아프리카
  • 죽기전 안물러난다던 무르시 권좌 최후엔 고립무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돼!” 이집트 군부를 이끄는 압델 파타 엘시시(58) 국방장관이 지난 1일(현지시간) 내놓은 48시간 ‘최후통첩’에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은 이렇게 일갈했다. 군부와 시위대의 요구에 저항하지 말고 시한 내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게 엘시시 장관의 말이었다. 완강히 거부하던 무르시는 결국 48시간 뒤 축출당했고, 그 순간 그의 곁에는 소수의 무슬림형제단 측근들 이외에는 의지할 이가 아무도 없었다. 4일 이집트군과 무슬림형제단 관계자 등에 따르면 권좌에서 보낸 마지막 시간에 무르시는 자기편에게서도 버림받고 군·경에도 아무 동조자가 없는 ‘고립무원’의 지경이었다. 전날 군이 제시한 최종 시한이 끝나고 특공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무르시는 압송에 조용히 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별다른 소동은 없었다. 그의 경호임무를 맡던 공화국수비대원들은 이미 몇 시간 전 자리를 떠난 상태였다. 무르시는 지난 몇 달 동안 사법부, 경찰, 군, 정보기관, 일부 이슬람과 기독교 고위 성직자 등 사실상 모든 권력기관과 불화를 빚었다. 안보기관은 무르시가 모르는 사이에 도시들에 병력을 배치하면서도 보고하지 않을 정도로 그에 대한 불신이 심각했다고
  • ‘민심이반’ 부른 무르시의 10가지 중대 실수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집권 1년 만에 축출된 데에는 독단적 국정운영과 경제재건 실패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이 밖에도 지나친 이슬람화, 사법부와 갈등, 언론 탄압 등 무르시의 축출을 초래한 원인은 다양하다고 아랍권 위성방송 알아라비야가 5일 보도했다. 다음은 알아라비야가 꼽은 무르시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 10가지를 정리한 것이다. ▲국가 기관의 무슬림형제단화 = 무르시는 집권 수개월만에 다양한 국가 기관에 무슬림형제단 인사들을 대거 등용했다. 각료 5명, 대통령실 8명, 주지사 7명, 부지사 12명, 주 고문관 13명, 시장 12명 등이 무슬림형제단 출신이라고 알아라비야는 전했다. ▲사법부와 갈등 = 무르시는 3권 분립 원칙에 반해 사법부를 장악하려다가 사법부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했다. 무르시는 지난해 11월 무바라크 정권 때 임명된 압델 메귀드 마흐무드 검찰총장의 해임을 명령했으나 법원은 지난 3월 위헌적 명령이라며 복직 명령을 내렸다. 지난해 11월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이른바 ‘파라오 헌법 선언문’도 사법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였다. ▲탄타위 국방장관 해임 = 무바라크 정권에서 임명된 탄타위 국방장관 해임은 결과적으로 군부의
  • 이집트 군부독재 향수…나세르 前대통령 아들 부상

    이집트에서 가장 막강한 정치 세력인 군부가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한 가운데 1950년대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가말 압델 나세르 전(前) 대통령의 아들이 새롭게 거론되고 있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나세르 전 대통령에 대한 이집트 국민의 향수가 짙어지면서 그의 아들이 현지에서 차기 대통령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5일 보도했다. 나세르 전 대통령은 1952년 군부 쿠데타로 왕정체제를 뒤엎은 인물이다. 이후 1956년부터 1970년 급성 심장경색으로 사망할 때까지 대통령으로 이집트를 이끌었다. 그는 대외적으로 외세 타파와 주권 강화를 목표로 내세워 당대 이집트 국민에게서 이집트의 자존심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쿠데타로 권좌에 올라 장기 집권한 ‘독재자’라는 정반대의 평가도 따른다. 최근에는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그가 과거 이들을 강력히 탄압했던 것으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나세르는 대통령직에 오르기 전 무슬림형제단의 암살 기도로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다. 아들 나세르는 무르시 축출 직후 시민이 모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연단에 올라 “아버지가 옳았다. 그는 이집트 국민이 무슬림형제단을 믿어선 안 된
  • 美 “이집트, 조기 대선 하라” 軍 “피 흘릴 각오”… 무르시 사면초가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와 군부로부터 전방위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하야 불가 방침을 거듭 밝히면서 이집트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이집트 사태에 소극적이었던 미국이 무르시 대통령에게 조기 대선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무르시 대통령이 고립무원의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야권과의 합의 실패 시 무력 개입하겠다는 군부의 최후통첩 시한(현지시간 3일 오후 4시)을 조금 앞둔 3일 오전 무르시 대통령은 생방송 TV에 출연해 “이집트 국민의 자유의지에 따라 공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만큼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하겠다”고 밝혔다고 BBC가 보도했다. 그는 “역사에서 퇴진하느니 나무처럼 서 있다가 죽는 게 낫다”면서 군부도 무력 개입 방침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발표 직후 이집트군 수뇌부는 공식 페이스북에 ‘최종 시간’이라는 성명에서 “테러리스트와 바보들에게 맞서 피 흘릴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해 무르시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군 관계자는 이 메시지는 무르시가 임명한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으로부터 나왔다고 전했다. 이집트 관영통신 메나는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이 최후통첩을 거부하는 상황에 대비해 헌법
  • 이집트군, 무르시 출국금지…친정부 집회에 탱크 배치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촉발된 정국 혼란이 결국 이집트 군부의 개입을 이끌었다. 이집트 군부가 최후 통첩 마감일인 3일(현지시간)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하는 모양세를 취하면서 무르시의 향후 거취에 관심이 쏠린다. 이집트 군은 이날 무르시와 그의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 일부 지도부에 대해 출국 금지 조치를 했다고 AP와 AFP통신이 보도했다. 이집트 공항 당국도 이날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 의장 모함메드 바디에, 부의장 카이라트 알 샤테르에 대해 외국으로 출국을 금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확인했다.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의 최고위 간부 일부는 2011년 시민혁명 기간 교도소에서 탈옥한 혐의 등으로 출국 금지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집트 군부가 제시한 ‘48시간’ 최후통첩 시한이 지난 가운데 무르시가 현재 가택 연금 상태에 있다고 알 하야트 TV 채널이 보도했다. 다른 현지 언론은 이집트 군인들이 무르시를 대통령궁에서 카이로 인근의 공군기지로 이송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아직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과 대통령궁 인근에 운집한 수십만명의 반정부 시위대 사이에서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 미국 “이집트 사태 매우 우려…쿠데타 여부 몰라”

    미국 정부는 ‘이집트 사태’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상황이 쿠데타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3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집트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 또 상황이 매우 유동적이어서 이집트 군부에 의해 쿠데타가 진행 중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있으나 행정부 관료들이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전날 발언에 대해 매우 실망스러워 하는 것은 명백하다고 설명했다. 무르시 대통령이 전날 목숨을 걸고 선출직의 합법성을 지키겠다며 군부가 제시한 ‘48시간 이내 사태 해결’ 최후통첩을 거부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사키 대변인은 “무르시 대통령은 국민이 시위를 통해 드러내는 요구에 더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우리(미국 정부)는 그에게 더 많은 조처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특히 무르시 정권이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을 포함해 각종 폭력 행위를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키 대변인은 이집트 군부의 움직임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묻는 말에 “모든 당사자가 서로 대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하
  • 이집트 무르시, 1년만에 권좌에서 축출…정국 안갯속

    이집트의 이슬람주의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가 집권 1년만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군부의 개입으로 결국 권좌에서 쫓겨났다. 과거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해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2011년 거센 ‘아랍의 봄’ 파고에 밀려 물러난 데 이어 무르시 대통령도 정책 실정과 민심 이반으로 실각하면서 이집트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치닫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야권과 협의를 거쳐 조만간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무르시 대통령과 집권 무슬림 형제단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여 향후 정국의 불투명성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임시 대통령에 헌재 소장 임명 이집트 군부는 3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을 축출하고 조기에 대통령 선거를 다시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은 이날 오후 9시께(현지시간) 국영TV 생방송에서 무르시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무르시가 이집트 국민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게 이유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동안 이집트 국민과 군부의 퇴진 압박에도 사임을 거부해온 무르시는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대통령에 취임
  • 이집트 시민혁명과 무르시 정권 주요사건 일지

    이집트 군부가 3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했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이 ‘1년 천하’를 마감하게 됐다. 군부는 헌법 효력을 정지하고 의회를 해산하는 한편 대통령 선거를 다시 치를 계획이다. 다음은 2011년 시민혁명 이후 민주화 과정과 무르시 집권 기간 주요 사건 일지. ▲2011년 1월 25일 = 무바라크 대통령 퇴진 및 정치·경제 개혁 요구 대규모 시위 시작 ▲1월 28일 = 금요기도회 직후 전국 시위로 경찰과 대규모 충돌 ▲1월 29일 = 무바라크 대통령 TV 연설, 내각 해산과 정치개혁 천명 미국, 캐나다, 영국, 스위스 등 세계 곳곳에서 연대시위 ▲1월 31일 = 이집트 군부-부통령도 무라바크 하야 요구 ▲2월 2일 = 최대 반정부 시위 100만 명 행진 ▲2월 3일 = 무바라크, ‘즉각 권력이양’ 요구 거부 ▲2월 10일 = 무바라크 대 국민 연설…조기사퇴 거부 ▲2월 11일 = 술레이만 부통령 “무바라크 사퇴 결심, 군에 권력 이양” 발표 1월25일부터 2월11일까지 850여명 사망 ▲3월19일 = 국민투표에서 77.2% 찬성으로 임시 개정헌법 가결 ▲4월13일 = 무바라크, 검찰 조사 중 병원 입
  • 집권 1년만에 실각한 이슬람주의자 무르시

    이집트 군부에 3일 전격 축출당한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은 최대 이슬람 조직 무슬림형제단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 이집트의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무슬림형제단이 창당한 자유정의당 대표를 맡고 있다가 대권에 도전한 무르시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인사인 아흐메드 샤피크와 치열한 경쟁 끝에 대권을 차지했다. 2011년 시민혁명 전까지 무슬림형제단 주요 간부로서 왕성한 정치적 활동을 벌인 무르시는 보수 이슬람주의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르시는 1975년 카이로대 공과대학을 졸업한 공학도 출신으로 198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USC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 중반 사상적으로 무슬림형제단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해 9년 뒤 정식 회원으로 가입했다. 무슬림형제단 정치국 위원으로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다 1995년 처음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2005년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한 개혁주의 판사들을 지지한 혐의로 그다음 해 구속돼 7개월간 복역한 전력도 있다. 무슬림형제단을 대표해 민주주의 개혁을 위한 사회 활동에도 참여했으며 2010년에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
  •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선 이집트 군부의 역사

    이집트에서 가장 막강한 정치 세력인 군부가 또 정치 전면에 나섰다. 지난해 6월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한 뒤 정치권과 거리를 둔 군부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 나흘 만인 3일 정치 일선에 나서 무르시 정권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다. 이집트 역사에서 군부는 지난 60년간 핵심 권력을 거머쥔 실세 역할을 해 왔다. 1952년 가말 압둘 나세르가 이끄는 ‘자유장교단’이 쿠데타로 파루크 왕조를 무너뜨린 이후 무르시를 제외한 모든 대통령은 이집트 군부의 강력한 지지를 권력 기반으로 삼았다. 이집트에서 군은 국민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다. 1948년과 1973년 사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4차례의 중동 전쟁을 치르면서 현재 군 복무자나 군 경험자가 없는 이집트 가족은 거의 없다.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73년에는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을 격파했을 만큼 ‘강군(强軍)’으로 인식되는 등 국민의 자랑 가운데 하나였다. 45만 명에 달하는 이집트군은 이집트 사회에서 가장 청렴하고 유능한 조직으로 존경받는 엘리트 계층으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집트에서 군부는 오랜 기간 신성불가침한 자치 영역으로 인정됐다. 군 예산은 의회에 공개되지 않았으
  • 무르시·무슬림형제단, 철권통치 답습에 몰락 위기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과 그의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이 파라오(전제 군주)처럼 행세하다 끝내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군부의 개입으로 몰락 위기에 직면했다. 국민의 정치·경제 개혁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민심을 뒷전으로 미루면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다는 게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의 시각이다. 올해 62살인 무르시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그가 보인 행동들은 지난 60년간 내려온 이집트의 정치 시스템, 즉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하는 통치 스타일을 답습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1인 통치가 지도자가 신처럼 추앙을 받아온 파라오 시대 때부터 내려온 이집트의 유산을 무르시가 그대로 따라 했다는 것이다. ’현대판 파라오’라 불린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철권통치가 끝난 뒤 무르시는 이집트 최대 이슬람 조직 무슬림형제단을 등에 업고 선거 기간 국민의 높은 기대를 모았다. 물론 자유·세속주의 세력은 무르시가 좋다기보다는 무바라크 시대의 연장을 막고 무슬림형제단이란 조직을 거느린 무르시를 어쩔 수 없이 지지한 측면도 있었다. 무르시는 집권 초반에는 통합과 평등을 약속하는 한편 화합차원에서 부총리직에 기독교계 인사를 기용하겠다는 뜻을 밝혀 호응을 얻었다. 그
  • 시리아 “이집트 사태, 이슬람 정치의 몰락 의미”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을 몰아낸 이집트의 대규모 시위 사태에 대해 “정치적으로 변질된 이슬람의 종말을 뚜렷이 나타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사드 대통령은 시리아 관영 일간지와 인터뷰 및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현재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것은 이른바 정치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의 몰락”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 세상 어디에 있든, 종교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그 이익을 일부에게만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 몰락하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옴란 알 주비 시리아 공보장관도 이날 이집트 사태를 해결하는 열쇠는 무르시 대통령이 사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이집트 국론분열은 또 다른 ‘시한폭탄’

    이집트 군부가 전면에 나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축출에 성공했더라도 국론 분열은 또 다른 시한폭탄이 될 것이란 전망이 다. 국론 분열의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이슬람 세력과 세속·자유주의 진영 간 내전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무르시 반대파들은 무르시 대통령 취임 1주년인 지난달 30일부터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과 대통령궁 앞에서 연일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반정부 시위에는 매일 수십만명이 집결했다. 이에 맞서 무르시 지지자들 수만명은 카이로 나스르시티와 카이로대 주변에 집결해 ‘무르시 결사 수호’를 외쳤다. 이들은 무르시 대통령이 자유민주 선거로 선출된 만큼 정당성을 확보했으며 ‘사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양측이 무르시의 퇴진을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한 사이 2일 밤 카이로 기자지역 카이로대학 인근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해 최소 18명이 숨지고 400명이 부상했다. 지난 1일에는 무르시의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 본부 경비원과 반정부 시위대가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8명이 숨졌다. 시위대 수십명이 무슬림형제단 본부 6층짜리 건물에 불을 지르고 내부 집기를 약탈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집트는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이전보다 훨씬
  • 무르시, 군부 최후통첩 거부… 이집트 국방, 쿠데타설 일축

    무르시, 군부 최후통첩 거부… 이집트 국방, 쿠데타설 일축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48시간 안에 정치적 혼란을 해결하라”는 군부의 최후통첩을 거부했다. 2011년 민주화 운동을 통해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축출한 이집트가 또다시 대혼란에 빠져들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최후통첩 시한인 3일 군부가 전면 개입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집트 대통령실은 2일 성명을 내고 “군부의 성명은 대통령과 협의하지 않은 일방적인 발표이며 혼란을 더욱 부추길 우려가 있다”며 군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실은 이어 “대통령은 앞서 시작된 절차에 따라 종합적인 화해를 이끌어내기 위해 (군부와) 노력하고 있다”며 “2011년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룩한 이집트 국민은 절대로 역사적인 후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일 이집트 TV에 출연한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은 반정부 시위대의 전국적인 시위를 ‘전례 없는 민의의 표출’이라고 표현한 뒤 “국민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군부가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알시시 장관의 발언은 무르시 대통령의 퇴진과 대선 재실시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받아
  • 만델라 입원 24일째…식지 않는 쾌유 기원 열정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95)가 1일로 24일째 입원 중인 가운데 그가 진료를 받는 병원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몰려 쾌유를 빌었다. 만델라는 폐 감염증이 재발해 지난달 8일 수도 프리토리아의 메디클리닉심장병원에 입원했으며 23일 밤부터는 위독한 상태가 지속하고 있다. 다만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만델라 병원을 찾은 뒤 성명에서 “마디바(만델라 존칭)가 위독하지만 안정된(stable)” 상태라고 소개했다. 맥스 시술루 하원의장도 지난달 29일 병원을 방문하고 나서 “마디바가 차도를 보이고 있어 기쁘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메디클리닉심장병원 앞에는 이날 경찰관들이 집단으로 방문해 그의 건강회복을 기원했다. 경찰관들은 촛불에 불을 붙이고 병원 정문 옆 담벼락 앞에 서서 만델라를 향해 경의를 표한 뒤 건강회복을 위한 기도를 했다고 현지 뉴스통신 사파는 전했다. 모제스 시토베 반장은 “신(神)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우리는 희망을 지니고 있다. 그의 생명은 신의 손에 있다”며 만델라가 100세까지 장수하기를 빌었다. 모린 라일루마 순경은 노래를 부르고 기도하면서 연방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내가 여기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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