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싱가포르는 시작일 뿐이다/황성기 논설위원
20세기 발명품 정상회담이 성공을 보장하는 해결사는 아니다. 강대국 주도, 미국에 의한 정상회담도 원샷 성공은 많지 않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조시 W 부시 전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 불렀던 것처럼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며 증오했다. 그러다 브레즈네프가 죽고 등장한 54세의 젊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비)에 주목했다. 고르비도 서기장 지명 하루 전 부인 라이자에게 “우리(소련)는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란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군비경쟁을 뜻했다. 그러나 레이건과 고르비가 만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들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1985년 11월에야 첫 회담을 한 뒤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워싱턴, 모스크바로 옮겨 다니며 4차례 정상회담을 가진 끝에 냉전 해체의 기틀을 만들었다. 2년 반 걸렸다. 레이건과 고르비 외에 조지 슐츠 전 미 국무장관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러시아 외무장관은 몇 차례고 만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영철 부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평양, 워싱턴에서 교차회담을 가진 것처럼. 미국의 ‘별들의 전쟁’(SDI) 계획과 핵 군축으로 대립하던 레이건과